[기억기관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살아있는 문학 혼과 상상의 날개

도서관닷컴 승인 2022.06.10 18:50 | 최종 수정 2022.07.21 10:49 의견 0

일본의 대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70살이 되던 2018년 놀라운 기자회견을 한다. 40여년 쌓였던 원고와 모아온 레코드, 소장도서 등 모든 자료를 모교인 와세다대(영화연극과, 75년 졸업)에 기증하겠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기념관 설립에 대해 "처음엔 '하루키 기념관'을 만들자는 안도 있었지만 내가 아직 죽지 않아서…(그렇게는 안됐다)". 과연 하루키답다. 그는 자료들이 학생과 연구자, 시민에게 자유롭게 공개되고 해외문학 번역, 세계문학 교류장소로 활용되는 '살아있는 도서관'을 생각했다. 이 구상을 현실화시켜주는 작업은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쿠마 겐고'에게 맡겨졌다.

하루키 문학 애호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이 도서관은 코로나19 시기에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2021년 10월 마침내 개관을 했다. 현재 이곳은 하루키가 학창시절 연극대본과 시나리오를 탐닉했던 와세다대의 유서 깊은 건물인 연극박물관(Tsubouchi Memorial Theatre Museum)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일본 건축계 거장 쿠마 겐고가 설계

기존의 국제문학관을 재정립해 새롭게 오픈한 도서관은 하루키 소장 자료와 음반,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된 3,000여권의 책 등을 기본으로 한 아카이브전시를 특징으로 한다. 지하 1층 라운지(실제로는 1층 같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자택 서재를 재현한 방과 함께, 'peter cat'이라는 재즈카페 운영 경험을 반영해 그의 피아노와 함께 'orange cat'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 공간이 연장된 자유열람 공간은 하루키가 도시, 그림, 음악, 요리와 술, 취미, 여행 등 개인적 관심사로 수집한 장서들이 비치되어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1층 갤러리 오디오 섹션에는 2만장의 소장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라운지와 하루키의 모든 저작을 망라한 연보와 함께 귀한 초판본과 전 세계 번역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하루키 팬과 문학 애호가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된 하루키 책을 펼쳐보며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2층 스튜디오에는 소규모 세미나실과 기획전시실, 작품음독 등을 위한 라디오방송실이 있다. 향후 창의적 발신과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도서관 개관기념으로 올해 2월까지는 '건축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큐레이션한 전시가 진행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자료 기증자와 건물 설계자 자체가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특히 기존 건물의 틀을 유지하고 남다르게 리모델링한 사례여서 건축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다.


일본 '건축잡지(新建築, 2022.1)'에 수록된 관련 내용이다. 쿠마 겐고는 "터널 같은 건축을 하고 싶다. 하루키의 소설은 터널 구조이므로. 세상의 모든 소설은 터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힘들고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소설이란 터널에 들어와 잠시 해방되어 위안과 힌트를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며 "일상의 도시에 건축이란 '터널'을 열어 주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쿠마 겐코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의 일로 그 곳은 덴마크 어느 작은 거리였다. 우연이었다. 이후 우리는 여러 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와세다대에 내 이름을 붙인 라이브러리를 만들게 되었을 때, 총괄 디자인을 그에게 부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라이브러리로 쓰기로 한 대학 건물이 무미건조한 4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는데 있었다. 겉보기에는 예전의 공단 아파트처럼 무미건조하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독창적이고도 창의적인 건축스타일을 전개하고 있는 그에게 이렇게 창의성이 부족한 일을 부탁해도 될까?"라고 생각했다. 하루키는 "이후 완성된 건물은 '와! 건물 그대로의 모양을 두고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구나'와 놀랄 정도로 훌륭한 '이전과는 다른 그 어떤 것'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대학 캠퍼스 안에,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이 새로 생긴 듯했다.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당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풍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완성되기까지 이어진 시대 최고의 소설가와 건축가의 소통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준다. 그들의 바램처럼 도서관은 하나의 세계에서 터널을 통해 빠져나와 또 다른 하나의 세계에 이르는 것 같은 환기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아담한 도서관내 하루키를 느낄 수 있는 사진, 음반, 피아노, 저술서와 번역서, 소설가의 안목으로 수집된 자료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터널을 나서면, 뭔가 무채색 일상이 새로운 기운을 얻어 다른 세계로 나아간 거 같은 느낌을 준다.

일상 속 비범한 순간 포착 신선한 자극

이전의 무미건조하고 평범했던 장소를 변화시켜 새로 바뀐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대학 캠퍼스에 신선한 지적 자극을 주고 있다. 도서관과 인접해 있는 건물로서 세익스피어 전집을 완역한 와세다대 츠보우치 박사(1859~1935)를 기념해 1928년 설립한 '연극박물관'과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내 '이건희 기념도서관(1965년 상학부 졸업)'이 트라이앵글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확장되는 와세다대의 기억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비일상적 터널 같은 공간속에서 일상 속 비범한 순간들을 잡아내며 많은 사람들이 그 터널을 뚫고 자신들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공간이다. 또한 우리 시대 소설가 하루키의 40년 삶의 흔적과 경험을 기반으로 축적된 주요 인생 키워드들이 자료로 축적돼 부드럽지만 선명하게 젊은 세대들과 공명하는 장소다. 와세다대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코로나19 이후 국제적 문학연구와 소통의 거점이 되며 새로운 발견과 교류를 위한 활기찬 장소로 만개할 것을 기대해 본다.

글·사진=박미향 와세다대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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