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토끼가 겁쟁이라고?

도서관닷컴이 전하는 상식 이야기

도서관닷컴 승인 2023.01.15 19:08 | 최종 수정 2023.01.15 19:13 의견 0

2023년 검은 토끼의 해가 시작됐다. 을묘(乙卯), 정묘(丁卯), 기묘(己卯), 신묘(辛卯), 계묘(癸卯) 순으로 육십갑자가 순환한다. 십이지(十二支)의 토끼(卯)는 시간으로는 새벽을 열어가는 오전 5~7시경을 의미한다. 묘반(卯飯), 묘수(卯睡), 묘음(卯飮)은 각각 아침밥과 새벽잠, 아침술(식전 해장술)을 뜻한다. 달로는 음력 2월, 방향으로는 정동(正東)을 나타낸다.

어릴 적 만난 토끼는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영약(靈藥)을 찧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가 마음속에 그렸던 달 풍경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토끼는 '장수(長壽)의 상징'이자 '달의 정령'으로 인식돼왔다. 토끼는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 조선 후기 우화 소설의 '별주부전', 판소리 '수궁가' 등에서 주연으로 등장한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서 토끼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구려 6대 태조왕 25년(서기 77년)이다. 그해 10월 부여국에서 온 사신이 태조왕에게 뿔 3개가 있는 흰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다고 한다. 왕은 이를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 죄수들을 풀어주라는 사면령을 내렸다.

토끼는 지혜와 슬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꾀보로 통한다. 거북의 등을 타고 용궁까지 갔다가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는 '별주부전'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있는 설화다. 토끼의 지혜를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꾀 많은 토끼는 3개의 숨을 굴을 파 놓는다'는 뜻. 사마천의 사기 '맹상군 열전'에 나온다. 위험이 닥칠 것에 대비해 플랜B, 플랜C를 마련해둔다는 의미다.

토끼는 눈처럼 흰 몸에 오물거리는 작은 입에 안테나 역할을 하는 긴 귀와 큼직한 앞니 2개를 갖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양옆에 달린 눈으로 360°를 볼 수 있다. 반면 얼굴 앞쪽에 가까이 있는 물체는 잘 보지 못한다.

토끼 눈이 빨갛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검은색이나 푸른색 눈을 가진 종이 더 많다. 인공 교배로 만들어진 알비노 토끼, 즉 색소 결핍증인 하얀색 집토끼만 눈동자가 붉다. 멜라닌 색소가 없어 망막 안쪽으로 흐르는 피가 반사돼 눈동자가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꼬리는 짧고 털이 많이 뭉쳐 있어 동그란 솜뭉치 모양이다. 꼬리를 세우면 경계의 표시고, 내리면 복종한다는 시그널이다.

토끼의 수명은 평균 10년. 수면 시간은 30분 정도로 매우 짧다. 숙면을 못 하고 자주 깨거나 토막잠을 자는 것을 가리켜 '토끼잠'을 잔다고 한다.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2~3배나 길다. 이 덕분에 평지와 오르막에서는 최대 시속 80㎞의 날쌘돌이가 된다. 토끼 발은 임전무퇴(臨戰無退)를 상징한다. 속도가 지배하는 21세기, 사람도 마치 토끼처럼 미친 듯 달린다. 하지만 토끼는 장거리와 내리막에서는 젬병이다.

토끼는 다산(多産) 분야에서 최고다. 임신 기간은 한 달이며 1년간 무려 40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서양에서 토끼는 '플레이보이', 토끼 발은 '행운의 징표'로 통한다.

토끼는 유순한 동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작고 귀여운 토끼는 애완용으로도 인기가 있다. 낯을 가려 마냥 착해 보인다. 겁먹은 듯한 눈과 놀란 듯이 쫑긋 세운 귀는 영락없는 겁쟁이 모습이다.

토끼는 작고 수줍은 초식동물이어서 연약하고 겁이 많다고들 여긴다. 그럴까? 동물 세계에서 보여주는 토끼의 형태는 생긴 것과는 딴판이다. 경계심이 높아 화를 잘 낸다. 화가 나면 '크크크' 소리를 내거나 뒷다리로 세게 땅을 '쿵쿵' 내리치며 상대를 위협한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매우 강하다. 자기가 구축한 아성에는 누구도 범접을 못 하게 한다. 영역 다툼을 할 때는 인정사정없는 폭군으로 돌변한다. 영역을 침범하면 가차 없이 공격한다. 앞발을 들어 가격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방을 물어뜯는다. 잠자는 토끼의 코털을 건드리지 말라.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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