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한프 『채링크로스 84번지』 (1970)
(이민아 옮김 / 출판사 궁리 / 156쪽 / 1만2000원 / 2004년 1월 30일 1판 1쇄 발행 / 2009년 8월 7일 1판 4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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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949~1969]
저는 희귀 고서적에 취미가 있는 가난한 작가입니다. (1949년 10월 5일 - 헬렌 한프) p9
부인께서 원하시는 해즐릿의 수필 세 편은 논서치 출판사에서 간행한 산문선집에 들어 있고, 스티븐슨은 <젊은이를 위하여>에서 찾았습니다. (...) 리 헌트의 수필은 쉽지는 않겠으나 부인께서 원하시는 목록을 모두 갖춘 탐스러운 서적으로 구할 수 있는지 애써보겠습니다. 저희 서점에는 부인께서 말씀하신 라틴어 성서는 없지만 라틴어 신약이 있고, 그리스어 신약도 있습니다.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판형에 헝겊으로 장정된 것입니다. 이 책들도 구매하시겠습니까? (1949년 10월 25일 - 마크스 서점을 대표하여 FPD) pp10~11
책이 무사히 도착했어요. 스티븐슨은 너무 훌륭해서 제 누런 골동품 책장이 부끄러울 정도랍니다. 이 부드러운 고급 피지와 뽀얀 상아빛 책장은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겠고요. (1949년 11월 3일 - 헬렌 한프) pp12~13
혹시 랜더의 <상상의 대화>를 구할 수 있을까요? 여러 권짜리로 아는데, 제가 원하는 것은 그리스 대화편이 실린 권이예요. 이솝과 로도피스의 대화가 실려 있다면, 그게 바로 제가 찾는 거죠. (1949년 11월 18일 - 헬렌 한프) p16
마침 저희 재고에 월터 새비지 랜더의 생애와 작품 제2권이 있습니다. (1949년 11월 26일 FPD) p17
새비지 랜더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1949년 12월 8일 헬렌 한프) pp18~19
저는 그저 어쩌다 책에 특이한 취향을 갖게 된 사람일 뿐이예요. 전부가 퀼러 쿠치라고 하는 캠브리지 교수 덕분이죠. Q라고 알려진 분인데, 열일곱 살 때 어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맞닥뜨렸죠. 그리고 제 생김새를 말하자면, 브로드웨이의 걸인만큼은 총명하게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늘 좀이슨 스웨터에 모직 바지를 껴입고 있답니다. (...) 런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저는 임항 열차에서 내려 지저분한 보도를 이 두 발로 직접 밟을 그날을 꿈꾸며 살아간답니다. 걸어서 버클리 광장까지 올라갔다가 윔폴 거리로 내려오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 탑 입성을 거부하고 앉았던 세인트폴 성당의 그 계단, 존 던이 앉아 연설하던 바로 그 계단을 저도 한 번 밟아보고 싶어요. (1950년 4월 10일 헬렌 한프) pp27~28
현재 재고에 옥스퍼드판 영시선이 들어왔습니다. 인도지에 파란색 헝겊 제본으로 1905년판 원본이며, 면지에 잉크로 글씨 쓴 것이 있기는 하지만 상태가 양호한 중고 서적으로 가격은 2달러입니다. 언젠가 뉴먼의 <대학의 이상>에 대해 문의하셨죠. 이 책의 초판에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1950년 9월 20일 프랭크 도엘) pp29~30
뉴먼이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이제야 마음이 진정되네요. 이 책을 하루 종일 탁자 위에 두고 타자를 치다가 한 번씩 만져보곤 해요. 이게 초판이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책은 처음 보기 때문이에요. (...) Q선집을 구했으면 해요. (1950년 10월 15일 HH) p35
로저 드 커벌리 경의 수필선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때마침 저희 재고에 18세기 수필선으로 한 권 있는데, 좋은 수필들이 수록되어 있고 체스터필드와 골드스미스의 수필도 있습니다. 오스틴 돕슨이 편집을 맡았는데 아주 훌륭하고 1.15달러 밖에 하지 않습니다. 이미 서적 우편으로 발송했습니다. 좀더 완성도가 높은 애디슨과 스틸 선집을 원하시면 알려주십시오.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51년 2월 2일 프랭크 도엘) pp38~39
오 저런, 월턴의 생애, 진심으로 축복을 기원합니다. 1840년에 출판된 책이 100년 넘게 이렇게 완벽한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마구리를 거칠게 재단한, 너무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책이에요. (...)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엘러리가 재계약되면 53년에는 그리로 건너갈 테니까요. 그땐 빅토리아풍 책사다리를 기어올라가 책장 꼭대기 칸의 먼지와 영국인들의 예법을 휘저어 놓을 참이에요. (1952년 3월 3일 hh) pp77~78
친애하는 헬렌, 막 한 개인의 서재를 통째로 사들였는데, 거기에 아주 깔끔한 월턴의 <낚시의 명수>가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1952년 4월 17일 프랭크 도엘) p80
제가 뭘 썼는지 아세요? 월턴의 생애에서 고용주의 딸과 눈이 맞아 달아난 존 던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지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존 던이 누군지 알 리가 없지만, 헤밍웨이 덕분에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닐지니"는 삼척동자도 줄줄 꿸 정도죠. 이 구절 하나 집어넣으니까 곧장 팔리더라고요. (1953년 5월 3일 hh) p93
우리 도서 목록의 <카룰루스>는, 당신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팔려버렸지만, 라틴어본이 수록되어 있고 운문은 리처드 버턴 경 번역에 산문은 레너드 스미더스 번역, 대활자판으로 인쇄된 것으로 한 부 보냈습니다. 제본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지만 상태가 꽤 좋은 깨끗한 책입니다. 지금은 없지만 토크빌 책도 찾아드리도록 애쓰겠습니다. (1955년 12월 13일 프랭크 도엘) p100
마침내 로브가 삽화를 그린 아주 훌륭한 <트리스트럼 섄디>를 구했습니다. 가격은 대략 2.75달러이고요. 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대화> 네 편도 한 부 구했습니다. 벤저민 조위트 번역으로 1903년 옥스퍼드에서 나온 책입니다. 1달러면 괜찮을까요?(1956년 3월 16일 프랭크 도엘) p104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이 책을 꼭 가져야겠어요. 셰퍼드가 삽화를 그린 것으로요. 하지만 부치지 마시고 9월까지 챙겨놨다가 새주소로 부쳐주세요. (...) 새 주소예요. 9월 1일부터 : 뉴욕주 뉴욕시 21 72번가 이스트 305번지 (1956년 6월 1일 hh) p106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지난 편지에서 요청한 세 권이 일제히 당신한테 가고 있습니다. (1957년 5월 3일 프랭크) p108
제가 그 트리스트럼 섄디를 얼마나 끔찍이 좋아하는지 말씀드렸는지 모르겠네요. 로브가 그린 삽화는 황홀할 정도예요. (...) 이 돈에는 일리아 수필집을 포함하여 다른 맥도널드 삽화 고전 총서 목록이 들어가요. 이걸 맥도널드 판으로 갖고 싶어요. 아니면 다른 좋은 판도 괜찮고요. 물론, 적당한 가격일 경우에요. (1958년 1월 10일 hh) p111
오늘 서적 우편으로 사무엘 존슨 Samuel Johnson (1709~1784)의 <셰익스피어론>을 보냅니다. 재고에서 우연히 월터 롤리의 서문이 붙은 옥스퍼드대학출판부판을 찾았습니다. 1.05달러밖에 되지 않고 신용장 잔액도 충분합니다. (1959년 3월 18일 프랭크) pp115~116
버나드 쇼와 엘런 테리의 <서한집>을 한 권 구했습니다. 그다지 탐스러운 판본은 아니지만 상태가 좋은 깨끗한 책입니다. (1960년 3월 5일 프랭크) p124
생 시몽의 <회상록> 한 부를 아크라이트의 번역으로 구매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모두 여섯 권으로 깔끔한 장정이고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1961년 2월 15일 프랭크) p129
틀림없이 놀라실 텐데, 버지니아 울프의 <일반 독자) 두 권이 우송 중입니다. (1963년 10월 14일 프랭크) p132
언젠가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현대판을 주문하셨죠? 며칠전에 당신이 좋아할 법한 자그마한 책자를 발견했답니다. (1963년 11월 9일 프랭크) p133
막 E. M. 델러필드의 <어느 시골 부인의 일기>를 구했습니다. 1942년 맥밀란에서 출판한 것으로 상태가 양호하며 가격은 2달러입니다.(1965년 11월 13일 프랭크) p138
지난해 9월 30일에 도엘 씨 앞으로 보내신 편지를 방금 발견했습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도엘 씨가 12월 22일 일요일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1969년 1월 8일 마크스 서점 비서 조앤 토드) p142
친애하는 캐서린- 책장을 정리하다가 사방에 책으로 둘러싸여 앉아 순풍에 돛단 여행을 기원하며 몇 자 끼적입니다. 브라이언과 런던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길 빌어요. (...) 너무나 긴 세월 꿈꿔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기기도 했고요. (...)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 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1969년 4월 11일 헬렌) p145
[에필로그 1969]
친애하는 헬렌, 저는 도엘 가족의 세 번째 통신원이랍니다! (...) 책 이야기를 듣고 아주 기뻤습니다. 편지들을 출판하신다는데 기꺼이 동의합니다. (...) 이따금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1969년 10월 실라) p148
[헨렌 한프가 마크스 서점에서 구입한 책들]
골드스미스 수필집 / 그리스 신약 성서 / 뉴먼 『대학의 이상』 / 버지니아 울프 『일반 독자』(제2권) / 『베오울프』 / 델러필드 『어느 시골 부인의 일기』 / 토크빌 아메리카여행 / 라틴 성서 / 라틴 신약 성서 (불가타 성서) / 리 헌트 수필집 / 『맥도널드 삽화 고전 총서』 / 『사포』(로엡고전총서) / 새뮤얼 페피스 『일기』 / 생 시몽 『회상록』 (프랜시스 아크라이트 번역) / 버나드 쇼 연극 비평과 음악 비평, 엘런 테리와의 교환 서한집 / 스티븐슨 『젊은이를 위하여』 / 애서가의 명시선 / 옥스퍼드 소사전 / 옥스퍼드판 명산문선 / 옥스퍼드판 영시선 / 와이엇의 연애 시집 / 월터 새비지 랜더의 생애와 작품 제2권 (『상상의 대화』 중에서 그리스 대화편이 실린 권) / 월턴 『생애』, 『낚시의 명수』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존 던 설교문 전집 / 존슨 셰익스피어론 (옥스퍼드대학출판부판) / 존슨의 연애 시집 / 찰스 램 『일리아 수필집』(맥도널드 삽화 고전 총서) /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현대판) / 체스터필드 수필집 / 『카툴루스』(로엡고전총서) / 캐슬 사전 / 커벌리 경의 수필선 / 케네스 그레이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 퀼러 쿠치 선집 『순례자의 길』 / 『트리스트럼 섄디』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대화 네 편』 / 플라톤의 그밖의 대화편들 / 해즐릿의 산문선집 / 『호라티우스』(로엡고전총서) / 힐레어 벨록의 수필집
[옮긴이의 말]
이 책은 1949년에서 1969년, 20년 간 한 도서 구매자와 서점 직원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다. (...) 구하기 힘든 것, 희귀한 것을 구하는 자의 절실함과 그 절실함을 이해하는 자의 성실함이, 까다롭고 저돌적이면서도 정 넘치는 가난한 작가와 점잖고 진지하면서도 보일락말락한 여유를 보여주는 서점 직원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 냄새 나는, 시공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얻은 것이 아닐까. (...) 헬렌 한프는 희곡 작가로 시작하여 방송 대본, 잡지 기사, 백과사전 항목, 어린이 역사책 등 닥치는 대로 글을 썼으나 단 한 편의 희곡도 무대에 올리지 못했고 어느 모로 보나 성공한 작가는 아니었다. (...) 이 책은 아주 특별한 만남에 관한 것이다. pp15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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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한프(Helene Hanff, 1916~1997)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고군분투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고, 『마침내 런던』에 영감을 준 런던 여행을 가능케 한 것은 1970년에 출간한 그녀의 회고록 『채링 크로스 84번지』였다. 영국 런던의 마크스 서점과 나눈 20년간의 편지가 책으로 세상에 알려지자, 그녀도 마침내 미국 뉴욕 밖의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 TV 드라마,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그녀는 평생 자유롭게 살며, 좋아하는 일에 드는 비용을 벌기 위해서만 일했다.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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