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서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도서관은 광역 대표도서관의 역할과 더불어, 기후도서관이라는 시대적 메시지를 품은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다. '올해의 사서상'을 수상한 박영애 경기도서관 운영팀장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음악도서관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도서관은 경험을 만드는 공간이라는 철학을 제시해 왔다. 그에게 경기도서관의 비전을 들어봤다.

_ 의정부미술도서관·음악도서관 등 특화 도서관을 이끌어오신 철학이 무엇이었나요? 그 경험이 경기도서관을 맡게 된 계기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요?

공공도서관은 '공공재'이자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의정부에서 미술·음악도서관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특화를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라,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꼭 필요한 공공성을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기획 경험, 특히 공간 구성에서부터 콘텐츠까지 직접 설계하고 마무리한 현장 경험이 경기도서관 운영을 맡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_ 경기도서관을 준비하며 가장 크게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인가요?

건축 구조 자체가 기존 도서관 문법과는 크게 달라, '찾기 쉬운 구조' 중심의 기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류번호 중심의 단조로운 배열을 벗어나, 서점처럼 '컬렉션' 중심의 접근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이용자들이 '813.6' 같은 분류 번호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점에 가듯 '한국 소설', '중국 소설', '영미 소설'처럼 섹션화(컬렉션)해서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게 만들었습니다. 초기엔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도서관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변화라고 판단했습니다.

건물 전체에 녹아든 기후·환경의 메시지

_ 경기도서관은 '기후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경기도서관은 31개 시군을 대표하는 광역대표도서관으로서의 역할 위에, 시대가 요구하는 기후·환경 메시지를 일관되게 담고자 했습니다. 소재 선택부터 전시 가구, 조형물까지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해 제작하는 등 공간 자체가 기후 위기를 기억하는 매개가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소재는 기존에 사용하던 아크릴 대신, 업사이클 가구를 사용하고 사인 소재도 종이나 나무를 재활용하거나 최소화했습니다. 가구와 조형물은 폐서적을 활용한 가구, 폐팔레트를 활용한 곰 조형물 등 버려지는 소재를 가지고 기후환경 컨셉에 맞게 제작했습니다. 공간 순화는 또 책길의 금속 핸드레일을 석화로 가리고, 금속 벽면에 우드필름을 붙여 순화하는 등 딱딱한 요소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4층은 기후환경 공방, 기후행동 1.5도 재료실, 지구를 지키는 책들 컬렉션 등 기후도서관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공간입니다. 이용자들이 낯설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도서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_ 좋은 도서관 공간의 조건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좋은 도서관의 조건은 지역을 기반으로 그 지역에서 필요한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외 우수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환경·사회적 필요를 기반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북유럽 도서관은 돌봄 공간이 부족한 사회 시스템 때문에 어린이 자료실이 놀이터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이미 키즈카페나 돌봄 공간이 많습니다. 북유럽 사례만 보고 와서 무조건 도서관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와는 맞지 않는 부적절한 답습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우수 사례만 보고 그대로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주민이 필요로 하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찾아 도서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컨설팅이나 교육을 하러 갈 때, 도서관 건립을 하면서도 '우리 도서관이 어떤 도서관이어야 하나요?'라며 지역을 모르는 상태에서 답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의정부 도서관을 맡았을 때 의정부라는 지역을 면밀히 파고들어 조사해서 도서관을 만들었죠. 한번은 영암의 도서관 건립 자문을 하게 됐을 때 부지가 명산인 월출산 바로 밑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역 주민만을 위한 도서관을 넘어, 월출산을 오는 외부 이용자까지 포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획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공공도서관은 지역 주민의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공공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열린 공간, 지역 협력, 그리고 하이브리드 도서관

_ 지역 서점 라운지, 청년 스튜디오 등 열린 공간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역할을 기대하셨나요?

경기도서관에 마련된 다양한 공간들은 시대적 메시지와 지역사회와의 연결이라는 두 가지 축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AI 스튜디오'입니다. 'AI 스튜디오'를 통해 고비용인 AI 프리미엄 툴을 도서관이 구독해 무료로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2000년대 디지털 전환 시대에 공공도서관이 디지털 자료실을 만들었던 것처럼, AI 시대에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찾은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지역 서점 라운지'입니다. 도서관과 서점의 공통 분모는 '책'입니다. 과거 지역 서점은 문화 사랑방 역할을 했지만, 대형 서점의 등장으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경기도서관이 광역대표도서관으로서 지역 서점을 알리고 협력하는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지역마다 개성 있는 서점들이 잘 운영되고 있는데, 이런 서점들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청년 스튜디오 (재능 기부 및 성장 지원)'도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애니메이션, 웹툰) 분야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이 도서관 이용자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재능 순환' 모델을 실험 중입니다.

_광역대표 도서관으로서 구상하는 협력 모델이 있을까요?

경기도서관은 31개 시군에 지원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도내 도서관들과 함께 만들고 싶은 협력 모델은 경기도형 ESG 지수 개발입니다. 기후환경 도서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려, 기후환경 활동에 대한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31개 시군 도서관에 적용해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시군 도서관이 함께 한다면 굉장히 큰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_ 정식 개관 이후의 운영 계획은?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가요?

경기도서관은 지역 도서관과 역할이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열람실 중심의 정적인 공간보다는, 개방적·복합적 공간을 유지해 경기도 전체를 위한 대표 도서관으로 기능하게 하려 합니다. 경기도서관은 수원시 공공도서관(지역 도서관)과 역할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계속 설득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도서관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지역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열람실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면, 경기도서관이 블랙홀이 되어 이용자들이 이쪽으로 다 몰릴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기존 열람실의 형태가 아닌 것처럼 만들어 비슷한 공간을 두는 개선은 하겠지만, 지역 공공도서관과 같은 수준의 열람실을 만들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열람실 형태의 책상과 의자가 있으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정숙해야 하는 분위기가 연쇄 반응을 일으켜 전체 공간을 정적인 도서관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_도서관이 워낙 넓다 보니 이용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더라고요. 처음 방문자를 위한 '베스트 동선이나 코스'를 추천한다면?

4층에서 시작해 테라리움을 보고, 책길을 따라 층을 내려오며 건물 전체 구조를 자연스럽게 체감해보시길 권합니다. 길을 따라가면서 공간을 여행하듯 경험하고, 중간에 원형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중앙의 개방된 중정을 통해 전체 공간을 한 번 온몸으로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_꼭 체험해보면 좋을 공간이나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프로그램은 계속 바뀌고 있어, 지금 시점에서는 AI 스튜디오를 꼭 한번 경험해보시면 좋겠습니다. AI 시대 공공도서관의 새 역할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처음 시도되는 역할과 공간이고, 특히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고 필요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후환경 공방에서도 기후환경 도서관을 경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

_ AI, 디지털 전환, 기후 등 도서관을 둘러싼 환경이 계속 바뀌고 있는데요. 10~20년 뒤 미래 도서관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나요? 그리고 이 변화 속에서 사서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보시나요?

도서관은 지역의 사람·정책·자원을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이브리드 도서관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모든 자원, 사람, 지역의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지방소멸 시대에 사람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허브, 센터가 될 수 있죠. 공공도서관은 공간이라는 가장 큰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정부나 국가의 많은 정책(돌봄, 다문화, 청년, 육아 등)은 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청소년․청년․다문화 정책․육아 정책 등 모든 정책이 각자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서관이 이 모든 정책을 담아내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사서의 역할은 이 모든 정책과 자원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기존의 획일적인 자료 정리 방식을 넘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공공성을 담아내고 한 사람의 성장을 지원하는 하이브리드 허브의 운영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_ 마지막으로, '경기도서관'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한 사람의 성장을 꾸준히 지원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도서관에서 쌓이는 경험이 한 사람의 삶을 넓히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 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기도서관이 단순한 대출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의 공공성을 연결하고 개인의 성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책 플랫폼이자 공공 실험지대로 설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획일적인 도서관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기후 환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담아내고, 때로는 익숙함을 포기해야만 만날 수 있는 '불편하지만 의미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그의 도전은 새롭다. 이러한 시도들은 경기도서관이 앞으로 그려갈 미래형 도서관의 지평을 한층 더 넓혀줄 것이며, 지역 공공문화의 방향을 재정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