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독형통]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영춘 할머니

도서관닷컴 승인 2022.12.16 08:19 의견 0
조아름 글·그림 ㅣ 40쪽 ㅣ 15,000원 ㅣ 북극곰

할머니는 옆 동네 영춘에서 이사와서 동네 사람들은 영춘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할머니와 나는 가끔 동네 뒷산 꼭대기로 올라가 할머니 고향을 바라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돌아온 할머니는 조금씩 달라지고 또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어린 나는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요.

분명 유아와 초등 저학년용 그림책인데,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한참을 멈추게 합니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려집니다. 외할머니입니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의 이름을 클 때까지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엄마의 엄마, 할머니라고만 불렀지, 할머니가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지, 할머니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본 적도 없었네요.

영춘 할머니는 겨울이면 뜨개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어린 나는 그 곁을 지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질 때면 가끔 할머니 생각을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채로 지냅니다. 영춘 할머니는 어딘가에서 이별을 준비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조아름 작가의 연필선은 매우 세심하고 따뜻합니다. 수묵화 분위기를 내면서도 파스텔화처럼 느껴집니다. 그림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기억 속 할머니를 찾아내게 됩니다.

슬픈 장면은 하나도 없는데 저절로 마음이 아리고 찡해옵니다. 초등학생 시절 시골 할머니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워 가마솥 밥을 해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이 생각나고, 가마솥 밥 위에서 끓던 구수한 찌개 맛도 떠오릅니다.

손녀의 손을 잡고 뒷동산에 오르던 영춘 할머니의 마음,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 괴로워하던 영춘 할머니의 모습, 어디에선가 홀로 뜨개질을 하며 이별을 준비한 영춘 할머니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젊은 할머니, 도시 할머니를 둔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할까요? 이들에게는 어쩌면 이 책이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현실이지만 보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듯한 판타지 속의 할머니.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날, '영춘 할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면 시골 할머니집에서 눈밭을 뛰어나니던 어린 나를, '할머니!' 하고 부르면 두 팔 벌려 반기시던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찬희 객원 북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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