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독형통] 딸 버지니아 울프와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의 에세이 최초 합본
아픈 것에 관하여 | 병실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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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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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에세이가 한 권에 담겼습니다. 20세기 천재적인 문학가로 꼽히는 버지니아 울프가 신경쇠약을 경험한 직후 침대에서 쓴 에세이 <아픈 것에 관하여 On Being Ⅲ>(1930)와 그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이 지인과 친인척을 간병하며 정리한 <병실 노트 Notes From Sick Rooms>(1883)입니다.
줄리아 스티븐의 <병실 노트>는 간병인을 위한 지침서입니다. 현대의 간병인이 참고해도 좋을 만큼 가정에서 환자를 돌보는 방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침구를 정리하는 법, 목욕시킬 때 옷을 벗기는 순서, 음식, 간병인이 유의해야 할 사항들, 심지어 환자가 사망한 후 간병인의 처신까지 일일이 설명합니다. 다만 의료 처치법은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크게 변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렇게 했구나 정도로만 이해해도 됩니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어 보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픈 것에 대하여>에서 문학이나 철학이 인간의 정신을 둘러싼 것에만 신경 쓴다고 말합니다. "침실에서 열이나 우울의 공격에 맞서 육체가 이 육체를 노예로 삼은 정신과 벌이는 대규모 전쟁들은 무시된다.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문학에서 질병 묘사를 막는 것은 빈곤한 언어다. …… 환자가 의사에게 머릿속 통증을 묘사하려고 하면 곧 언어가 말라버린다. 그를 위해 준비된 표현이 없다"라고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감정을 문학적 표현으로, 줄리아 스티븐은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으로서의 행동 지침을 실용적으로 적어 내려간 듯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줄리아 스티븐은 많은 이들을 보살피고 간병 관련 지침서를 남겼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평생 몸과 마음의 병을 앓은 딸을 간병하지 못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열세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처음으로 정신 이상 상태를 보였고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영민한 눈으로 세상과 문학과 여성들과 자신들을 통찰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47년의 시간을 두고 각각 출간됐던 두 권의 에세이는 한 권으로 묶이면서 영문학자, 편집자, 의사, 세 사람의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원문을 먼저 읽고 해설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원문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어머니와 딸은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해설자들의 글을 통해서 애틋하게 연결되기도 교차되기도 하는 느낌입니다.
병을 대하는 자세나 글을 풀어가는 방식이 꽤 다른 두 사람의 글이지만, 글을 읽다 보면 한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이 떠오릅니다. 환자는 간병인에, 간병인은 환자에 마음의 벽을 낮추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김찬희 객원 북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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