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낯선 나도,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니 그 낯선 나를 가장 먼저 사랑해 줘야 할 존재도 바로 나 자신이다."_50쪽, 두 번째 만남『분신』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1년 6개월 동안 도스토옙스키의 전 작품을 탐독한 한 비전공 독서 모임의 생생한 기록이다. 회사원, 교회 목사, 대덕단지 연구원, 대학생, 취업 준비 중인 아르바이트생, 가정주부 등 지극히 평범한 1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매달 한 차례 도스토옙스키 작품 한 편을 읽고, 대전의 작은 도서관에 둘러앉아 소박한 저녁 식사를 나누며 작품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이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은 2023년 9월부터 2025년 2월까지 1년 반에 걸친 여정을 통해 마침내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모든 봉우리를 등정했다.
저자 김영웅은 이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이끈 주인공이다. 그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완독하는 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현재 대전에서 '인생책방'이라는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포항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실험생물학자로, 현재는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생물학자의 신앙고백》,《닮은 듯 다른 우리》,《과학자의 신앙공부》를 썼고,《과학과 신학의 대화 Q&A》를 번역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전문가의 해설서'가 아니라는 점이다.『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평범한 독서가들의 기록답게, 누구나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독서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다시 읽기'와 '함께 읽기'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곱씹으며 읽고,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 선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해석을 나누는 과정이 독서의 깊이를 어떻게 확장시키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를 1부 초기작, 2부 중기작, 3부 후기작으로 나눠 구성했다. 이는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눈 순서이기도 하다. 각 작품 말미에 수록된 '말, 말, 말' 코너는 모임 중 각자 발표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아, 마치 모임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책 곳곳에 실린 '성공적인 독서 모임 꿀팁'에는 장소 섭외 방법, 감상문 작성 방식, 회비 운용 노하우 등 저자가 직접 겪으며 얻은 경험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다.『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이 말이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김규회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