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다. 고로 존재한다.'
몸이 달아오를 만큼 갈증 허기를 느낄 때 들이켜는 물은 키스처럼 달콤하다. 물은 살림꾼이다. 음식물의 소화·흡수를 돕고 분해된 영양소를 각 기관으로 전달해준다.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마시는 물은 약수다. 밤새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주고 위와 장의 활동을 촉진해 변비를 막아준다. 또 위산이 과다하게 나오는 것을 방지해 아침 식사에 도움을 준다.
우리 몸의 60~70%는 물이다. 혈액의 94%, 폐와 간의 86%, 근육의 70~80%, 뇌와 심장의 75%, 콩팥의 74%, 간의 69%, 심지어 뼈까지도 22%가 물이다. 체내 수분이 1~2%만 부족해도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낸다. 바로 갈증이다. 이를 계속 방치하면 피로감·근육 감소·현기증·집중력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몸속 수분을 10% 상실하면 심근경색증·심장마비 위험이 급증하고, 20% 이상 잃게 되면 생명에 적신호가 켜진다.
'물=건강' 공식은 상식으로 통한다. 물을 충분히 마셔야 건강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혹자는 특정 질병을 예방한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생수병을 갖고 다니면서 물이 떨어질 만하면 채워서 그날의 목표량을 채운다. 물을 많이 마시면 체내의 수분만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거나 피부가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도 음식이다. 마셔야 한다. 음식이 소화·흡수되는 과정과 동일하게 물도 체내에서 작용한다. 위로 들어간 물은 장에서 흡수되며 각 세포조직으로 전달된다. 물을 공급받은 세포는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한다. 물은 신장 등 모든 장기를 거쳐 호흡으로, 피부와 대변으로 배출되며 대부분은 소변으로 빠져나온다.
물은 많이 마실수록 좋은가.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많이 마시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물 자체는 음식과 달리 씹히지 않아 자꾸 마실 경우 위장에 부담을 준다. 과일이나 채소로 수분을 섭취하는 것과 물을 마시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일이나 채소에 있는 수분은 그 자체로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어 씹는 과정을 통해 침이 섞여 들어가 소화·흡수가 쉽다.
우리 몸은 나트륨이 일정 농도로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혈액 속의 나트륨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저나트륨혈증이 생긴다. 이럴 때는 얼굴·팔다리 등이 붓는다. 특히 신장병·당뇨병·심장병 환자는 물을 많이 마셔서는 안 된다. 신부전증 환자는 소변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물이 필요 이상으로 몸에 쌓이게 되면 장기들이 붓는다. 간경화증 환자는 복수가 차기도 한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소변을 보면 소변이 깨끗해 보인다. 정말 깨끗해진 것일까. 아니다. 착시 현상으로 인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소변에서 나오는 독소나 찌꺼기의 양은 같다. 많은 양의 물로 희석돼 맑게 보이는 것뿐이다.
일부는 물의 과다 섭취를 경계한다. <소박한 밥상>의 저자 헬런 니어링은 "갈증이 나지 않을 때도 물을 마시는 동물은 유일하게 인간뿐"이라며 "하지만 인간은 매일 생과일을 먹기 때문에 물을 마실 필요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팀은 "물이 건강에 이롭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마셔야 한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의 마거릿 매카트니 박사는 <<영국 의학 저널>> 기고에서 "물을 하루 8잔(약 2ℓ) 마시는 것은 지나치며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논한다. 물 8잔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에 좋다고 권고한 수치.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새로운 연구 결과를 인용해 "하루 8잔의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세상사 모든 일에 때론 과유불급(過猶不及)인 것이 있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