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원한 생각놀이] 10월 가을

도서관닷컴 승인 2024.10.23 15:02 의견 0

10월 가을

저는 가을입니다.

일 년에 3달밖에 살지 못합니다.

지금이 10월이니

사람이라면 40,50대이지요.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제가 무척 바쁩니다.

시원한 바람도 생산해야 하고요.

곡식과 열매에 맛있는 햇빛도 실어 날라야 해요.

나무 속살을 몰래 보는 것도 제 일입니다.

속살을 들킨 나무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집니다.

사람들은 그걸 단풍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무척 힘듭니다.

시원한 바람이 창으로, 벽으로, 세상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도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며든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햇빛도 말을 잘 듣지 않아 살살 달래야 하고요.

나무 속살을 몰래 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몰래 본다고 나무가 엄청 욕을 퍼붓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을이니까요.

가을이라는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제 이름은 황인원입니다. 어질인(仁)자에 근원원(源)자를 쓰지요.

'어짊을 근원으로 삼고 사는 삶'이 제 이름의 뜻입니다.

어짊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삶의 목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노자 도덕경 첫 장에는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름 있어야 만물이 태어난다는 뜻이지요.

저도, 여러분도 이름이 있기에 불려집니다.

이름이 없으면 부를 방법이 없지요.

아저씨, 아줌마, 형님, 동생 등 모든 호칭이 이름입니다.

벽, 문, 꽃, 나무, 집 등 모든 게 이름입니다.

노자가 이름이 있어야 만물이 태어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불릴 수 있어야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지요.

그렇게 태어난 존재물은 모두 이름을 따라, 이름에 맞게 삽니다.

이름이 가진 의미의 역할을 하며 사는 거지요.

가을을 보십시오. 기후 변화니, 기상이변이니 해도

아직 가을은 가을 역할을 합니다.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누구나 좋은 의미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에 나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 의미대로만 살아도 각자 성공한 삶일지 모릅니다.

곧 2024년 가을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길로 떠날 겁니다.

이 가을은 '과연 이름대로 어떤 일을 하고 갈까'를 생각하고

'나는 내 이름대로 살고 있나'를 돌아보는 시간, 10월에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시인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장·도서출판 '넌참예뻐' 대표

저작권자 ⓒ 도서관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