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이런 건배사 저런 건배사, 송년회 때 분위기 띄워보세요

도서관닷컴이 전하는 상식 이야기

도서관닷컴 승인 2022.12.22 15:19 의견 0

드디어 12월, 송년회의 시간이다. 한 해 동안의 아쉬움과 보람을 한 잔 술에 털어 보낸다. 이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배하는 일이다. 건배는 훈훈한 술자리에서 통과의례처럼 늘 빠지지 않는다.

건배(乾杯)는 '잔(杯)을 깨끗이 비운다(乾)'는 뜻. 서로 잔을 들어 축하하거나 건강과 행운을 빈다. 건배 구호는 나라마다 다르다. 영미권에선 보통 '치어스'(cheers), '토스트'(toast)라고 외친다. '토스트'라는 말은 축배에 토스트 빵을 넣어 먹었던 데서 비롯됐다. 일본에서는 '간빠이'(乾杯), 중국에서는 '간베이'(干杯)라고 한다.

서양에서 건배는 의심(疑心) 문화의 산물이었다. 같은 병에 담긴 술을 나눠 마심으로써 독주(毒酒)가 아님을 확인하고자 했다. 단숨에 원샷으로 들이켜는 건 상대방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는 믿음의 제스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기원(祈願)의 의미가 더 크다.

건배할 때 바늘에 실 가듯 따라붙는 것이 건배사다. 술자리가 점점 무르익으면 으레 "건배사나 해보지"하는 말이 나온다. 건배사는 가장 짧고 강력한 스피치다. 너무 길면 듣기 곤혹스럽고, 판에 박힌 레퍼토리는 식상하고 싱겁다. 지나치게 농(弄)을 섞으면 어색하고 민망하다.

모임을 흥겹게 하는 절묘한 건배사는 모임의 분위기를 일대 반전시킨다. 촌철살인의 멋진 건배사는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분위기를 고조시켜 덩달아 술맛까지 달게 한다. 술잔을 들고 임팩트 있는 건배사로 좌중을 휘어잡을 때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달아오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흥을 깨고 썰렁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활력과 흥을 불어넣어 뜨거운 박수를 받을 것인가.

건배사는 모임의 성격, 맥락에 따라 다양하다. 그렇다면 유익하고 재미나며 분위기를 압도할 건배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많은 건배 구호는 단연 '위하여~'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가장 장수하고 있다. 영어 건배사인 "원샷!"과 불어·독어 건배사라는 "마셔부러!"와 "마신당께!"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깜찍한 외국어 풍 건배사.

여러 단어의 앞부분을 이어 모은 건배사도 대유행이다. 예컨대 119!(한 가지 술을 1차에 오후 9시까지만 먹자), 9988!(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하여), 너나잘해!(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하여),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당신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있게 져주면서 살자), 마징가!(마시자 징하게, 가야할 때까지), 변사또!(변함 없는 사랑으로 또 만나자),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사이다!(사랑합니다 이 생명 다 바쳐), 소녀시대!(소중한 여러분 시방 잔을 대보자), 스마일!(스쳐도 웃고, 마주쳐도 웃고, 일부러라도 웃자), 오바마!(오면 바로 마시자), 오징어!(오래오래 징그럽게 어울리자),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위하여), 원더걸스!(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 재건축!(재미나고 건강하게 축복받으며 살자), 지화자!(지금부터 화끈한 자리를 위하여),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참이슬!(참사랑은 넓게, 이상은 높게, 술잔은 평등하게),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등등.

가령 선창자가 술잔을 들고 "인생은!"을 외치면 다함께 "직진!"이라고 합창하기도 한다. 껄껄껄!(좀 더 사랑할 껄, 베풀 껄, 즐길 껄), 통통통!(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 등과 같은 의성·의태어도 있다.

'소취하 당취평.'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 건배사엔 정해진 법칙이 없다. 건배사의 형식은 자유롭다. 백지 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리면 된다. 분위기를 띄우는 효과만 있으면 만점.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저작권자 ⓒ 도서관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