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공공도서관 연체료 ① 미국 도서관이 '책 도둑'을 그냥 둔다고 ?

도서관닷컴 승인 2023.06.05 18:13 | 최종 수정 2023.06.13 10:31 의견 0

두 달 전 쯤, 한 언론에 실린 '미국 도서관에는 연체료가 없다'는 한국 특파원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기자는 미국 도서관 시스템에 감탄하면서, 특히 뉴욕시 공공도서관이 연간 연체료로 받는 수입이 연간 300만 달러(약 39억 원)인데도 이걸 포기한 이야기를 전한다. 뉴욕시 도서관들이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설사 새 정책을 악용한 '책 도둑'이 나오더라도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효용이 훨씬 크다고 본다"라며 "뉴욕시 뿐 아니라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등 주요 도시 공공도서관들도 연체료를 폐지하는 추세이다"라고 적고 있다. 기자가 미국 도서관 연체료에 대해 기사를 쓴 이유는 뭘까.

기자는 "미국에서는 공공도서관을 주로 계층 간 지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연체료라는 접근에 걸림돌이 되는 조치를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의 한 수단으로 공공도서관에 주목하고, 그런 도서관 문턱을 낮추는 조치로서 연체료를 없애는 것을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기사를 본 사서나 도서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 댓글에는 연체료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상황이 다르고, 우리나라 사정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두루 제시되고 있다. 우리도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출정지와 연체료를 부과하는 이유

연체료는 정한 대출기간 내에 자료를 반납하지 않은 이용자로부터 도서관이 징수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왜 도서관에서 대출도서가 제 때 되돌아오지 않을 경우 빌려간 이용 시민에게 연체료 부가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출도서가 기한 내에 반납하지 않는다면 그 도서를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또 공공재인 도서관 책에 대한 사적 점유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용자로서의 정당한 책임을 인지시킴으로써 도서관 자원의 공공적이고 효율적 이용을 꾀하기 위해서다. 그런 목적으로 기한 내에 대출도서를 반납하지 않는 경우 계도성 벌칙 또는 벌금으로써 일정 기간 대출정지 또는 연체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연체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서울시를 포함해 대부분 도서관이 일정 기간을 대출을 정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인 도서관이 이용자로부터 현금을 징수하는 과정에 부과되는 절차의 복잡함이나 사후 부담감 등에 따른 조치일 듯하다. 현금으로의 징수 절차를 없애고 대출정지라는 보다 단순하고 부담이 적은 조치를 택하고 있다.

다만 연체 기간 동안 대출을 정지시키는 조치가 일부 즉각 다시 도서를 대출받고자 하는 이용자에게는 과도한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도서관은 늦게라도 대출한 책을 반납하면서 추가적으로 도서를 대출하고자 할 경우에는 연체료를 내고서 대출정지라는 벌칙을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이용자의 선택권을 고려한 것이다. 이 경우 도서관은 여전히 현금을 징수하는 일과 추가적인 행정 절차를 감당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연체료를 부과하는 것은 도서관 자원인 책을 사적으로 점유하지 않도록 해서 다수의 이용자에게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연체료 제도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용자에게 이해를 구하고, 연체 도서에 관해 보다 세밀하고 상세한 데이터 확보를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의 사명 실현이 트렌드

미국에서는 도서관 대출도서 연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수십 년 혹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납되지 않은 책들이 다시 반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도서관에서는 대체로 연체료를 감면해 주면서 미담의 소식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대출한 도서를 제때 반납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공권력까지 동원됐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현실적으로 연체료가 발생할 경우 그것을 징수하기 전까지는 도서관과 사서에게 징수 책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일부 도서관은 연체료 징수 관련 업무를 외부 채무추심회사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미국에서 일부 지역이나마 공공도서관들이 연체료 부과 정책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공공도서관은 2021년 5월부터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토니 막스(Tony Marx) 관장은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연체료는 도서 반환을 보장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뉴욕시민(뉴요커)들은 매우 신뢰할 수 있고, 책임감이 있으며, 도서관 장서는 다른 사람들도 빌릴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을 확실하게 존중합니다. 반면 불행하게도 연체료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도서관과 책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오히려 효과적입니다. 이런 상황은 모든 사람이 지식과 기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서관의 사명과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뉴욕시는 팬데믹으로 인해 드러난 불평등과 씨름하면서 공공도서관을 개방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시급합니다."

그는 연체료라는 벌금 부과 체계가 시민들에게 특히 19세 미만의 시민들에게 책임과 윤리를 가르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실제 연체료 부과 조치를 폐지한 일부 도시에서는 시민들의 도서관 방문이 다시 늘었고, 그만큼 도서 반환도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연체료가 도서관 운영이나 연체된 도서 회수에 필요한 행정 비용 등에 쓰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재정적으로도 큰 도움이 안 되고, 공공도서관 경우는 그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도 고려해 연체료 징수를 포기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근래 뉴욕시 공공도서관들의 조치는 단지 해당 도서관들만의 결심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도서관계가 연체료를 포함해서 여러 형태의 벌금이나 비용 부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미국도서관협회(ALA)는 오래 전부터 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사용료(fines)를 부과하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반대하고 제거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19년 1월 '사회적 불평등의 한 형태인 금전적 도서관 벌금에 대한 결의문(Resolution on Monetary Library Fines as a Form of Social Inequity)'을 채택하기도 했다. 즉, 팬데믹 시대를 지나면서 사회적으로 각종 형태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도서관 서비스도 영향을 받게 되면서 차별과 제약 없이 도서관 자원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연체료 부과 조치 폐지가 미국 도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영국 도서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도서관들이 공공도서관의 사명을 실현하는데 연체료 부과를 포함한 각종의 제약 요인을 반대하고 제거하는데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한국도서관사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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