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국가도서관위원회 윤희윤 위원장

"도서관은 문화선진국 필수재,
지식층 넓히는 일에 앞장서야죠"

도서관닷컴 승인 2024.05.24 09:41 | 최종 수정 2024.07.23 09:54 의견 0

부재(不在). 이번처럼 장기간의 공석(公席)은 유례없다. 긴 가뭄 끝 단비일까. 지난 4월 11일 무려 2년의 동면(冬眠)을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제8기 국가도서관위원회가 닻을 올리며 희망의 그루터기가 만들어졌다. 이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된다. 국가도서관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로 11개 정부 부처의 장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부위원장인 명실공히 우리나라 도서관계의 최고 기구다. 봄을 시샘하듯 찬 비바람을 쏟아낸 이튿날인 5월 16일, 윤희윤 위원장을 집무실(국립중앙도서관 7층)에서 만났다. 윤 위원장은 최고의 문헌정보학자이자 도서관계의 거목으로 불린다. 달변가로 유명한 그는 인터뷰 내내 유영하듯 지적 유희를 즐겼다.

_취임 소감은.

공백이 길었던 만큼 도서관계 뿐만 아니라 출판계, 독서계 등에서도 기대 수준이 높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던 좌우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생각입니다. 도서관 생태계의 건강성을 확보해 지식강국 문화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원장의 임기는 2년. 그의 메시지는 짧지만 단호했다.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국가도서관위원회는 그동안 존치 및 소속과 관련해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갔다. 문화의 요체는 도서관인데 위원회 존치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게 불편했다. 현재 위원회 소속을 대통령 소속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속으로 변경하는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조만간 구성된 22대 국회에서 법안이 다시 상정될지는 미지수다.

모두가 행복한 도서관…제도와 정책 개선 노력

_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24~2028) 중에서 가장 주력할 부분은 무엇이고, 제8기 국가도서관위원회의 중점 과제라고 한다면.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은 '모두가 행복한 도서관'을 비전으로, '따뜻한 동행', '공동체 성장', '지속가능한 미래'를 핵심가치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4대 정책목표, 12개 핵심과제, 24개 추진과제, 49개 실행계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대 정책목표는 '누구나 자유로운 이용, 모두의 도서관', '공동체 활력, 문화연대 플랫폼', '국가 경쟁력 강화, K-지식자원 보고', '미래를 위한 준비, 도서관 혁신' 등입니다.

이는 모두 중앙행정기관 및 시도가 실행하는 과제여서 위원회는 정책적 지원 및 성과 제고에 방점을 둘 계획입니다. 특히 새로 포함된 실행계획 중 사회서비스, 도서관 문화랜드마크화, 제도적 측면에 정책적 노력을 경주할 생각입니다. 사회서비스는 사회적 독서문화 확산, 약자 서비스‧신기술 융합서비스‧세대 공감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는 내용입니다. 도서관 문화랜드마크화는 국립 특화형 분관 추가 건립, 문화도시사업과 연계한 지역별 명소도서관 건립 등이며, 제도적 측면으로는 사서 자격제도 개선, 광역대표도서관 역할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윤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필수재'라고 말한다. 문화적인 삶에 있어 도서관은 매우 중요하며, 한국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베이스캠프가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공공도서관은 공공재로서 더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인구와 별 차이가 없는 영국이 3,900개다. 미국은 9,700개, 일본은 3,200개. 우리나라는 1,300개로 턱없이 부족하다"며 "참다운 선진국이라면 도서관을 통해 지식층이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관'이란 단어가 마음에 잡혔다. 그가 대학에 입할 당시만 해도 낯설었을 도서관학과(현재는 문헌정보학과). 그가 어떤 연유로 문헌정보학에 발을 디뎠을까 궁금했다.

_도서관학을 전공한 특별한 계기라도.

고등학교 은사님이 권하셨습니다. 제가 평소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안 은사님은 대학 진학과 전공을 앞두고 이와 연계한 당시 새로운 인문학이었던 도서관학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대학 본고사 영어 시험 문제 중에 긴 문장을 설명하는 단어를 쓰라는 문항이 있었는데, 그 정답이 'library'였습니다. 어찌보면 도서관과는 천생연분의 인연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자랑 같지만 국어, 수학, 역사를 곧잘 했습니다. 특히 역사는 학우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특출 났습니다. 안동사범을 다녔던 삼촌의 영향으로 6살 때 천자문을 다 떼었습니다. 중학교땐 시골 전체에서 고전읽기대회 대표로 나가기도 했고, 대학교 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시(詩)가 당선돼 상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 그 거금은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헌납했습니다.

일체유심조, 마음에 담고 살아

그에 대한 수수께끼가 꼬리를 물었다. 많은 논문과 책들, 상들은 어떤 의미들이 있는 건지, 삶의 이면에 숨겨진 1인치는 뭔지. 질문을 이어갔다.

_대표 논문과 저서를 꼽는다면. 기억에 남는 상(賞)과 활동은. 2023년 '대구시 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했는데 후일담이 있다면.

지금껏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대표 논문은 『고대 이집트 도서관의 원형, 페르앙크의 추적』이 아닐까 합니다. 이 논문으로 지난 5월 10일 한국문헌정보학회의 제1회 우수논문상을 받았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드리라며 사양했는데 꼭 받아야 한다며 강권하는 바람에 받게 된 상입니다. 2019년 출간한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몇 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굳이 대표 저서를 들라면 정년퇴임을 앞두고 주력한 저서 <책과 도서관:불멸의 기호학>을 꼽고 싶습니다. 이 책은 평생 공부하면서 일군 결과물이기에 더욱더 보람이 있습니다. 이 책은 '기록과 책의 진화', '책의 백미와 증언', '동양의 도서관 명칭과 쟁점', '고전 필사본의 유량과 귀환', '비블리오코스트의 진상과 메타포', '문학과 영화 속의 오마주', '책과 도서관의 불멸의 기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책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함축한 '자작시'가 있습니다.

퇴임하면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지만, 지난해 대구시의 '문화상'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작 수상 당일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스위스 여행 중이어서요. 또 지난 연말에 '제야의 종' 타종식에 함께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이때도 다른 피치 못 할 일정과 겹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내게는 둘 다 매우 중요한 행사인데 공교롭게 다 참석하지 못해 대단히 아쉽게 생각합니다.

윤 위원장은 40년 이상을 불교에 정진한 독실한 불교 신자다. 법명이 있을 법도 하다. 그는 불심이 깊지 못하다며 거절했다. 자신의 호 '무여(無如)'로 법명을 대신한다. 그는 '심외무법'을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이는 불교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것은 모두 마음이 만드니 마음밖에 다른 법은 없다'는 뜻이다. 그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5,000만자가 넘습니다. 이를 5자로 줄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고, 4자로 줄이면 '심외무법(心外無法)'이고, 2자로 줄이면 '불이(不二)'이고, 1자로 압축하면 '심(心)'입니다. 결국 모든 행위의 주체는 마음에서 시작 된다"고 말한다. 그의 취미는 수집이다. 책이 아니다. 돌이다. 수석(壽石).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삶의 윤활유 같은 존재다.

알짜 정보 고르는 일은 취미인 수석과 닮은 꼴

윤 위원장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비대칭 미륵상 모양과 염주를 걸고 있는 돌멩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런 자연석도 있다니. 미륵상은 20여 년 전에 영주에서 봉화로 넘어가다가 계곡에서 발견했는데, 당시 수집상이 350만 원을 줄 테니 팔라고 했다고 한다. 현재 시세로 계산하면 천만 원 이상을 호가한다. 그의 돌멩이론(論)은 평생 천착했던 문헌정보학으로 자연스레 연결됐다. 그는 "무수한 돌멩이들 중에 그 적합한 형상을 찾아내는 것은 마치 무수한 정보의 모래밭에서 유용한 정보를 골라(hunting, harvesting)내는 것과 비슷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인생철학이 처음과 끝이 흐트러짐 없이 맞닿아 있는 사실에 놀랐다.

윤 위원장은 매일 새벽 4시부터 1시간 동안 자택 인근의 공원을 산책하듯 운동한다. 그가 뭘 생각하며 거닐지 스무고개를 자문해본다. 천상 학자인데 어떤 때는 작가이기도, 철학자이기도, 행정가이기도, 웅변가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의 변신은 무제(無題)다.

김규회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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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윤 위원장은

1958년생. 경북 청송 출생. 경북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30년간 재직하며 도서관장‧사회과학대학장‧사회복지대학원장을 지냈다. 한국도서관정보학회 회장, 국립중앙도서관 자문위원장,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도서관 지식문화사>, <정보자료분류론>, <공공도서관정론>, <대학도서관경영론>, <책과 도서관:불멸의 기호학> 등이 있다. 2002년 한국도서관상, 2005년 국무총리상, 2014년 한국도서관·정보학회 공로상, 2023년 대구광역시 문화상, 2024년 문헌정보학회 학술상 등을 받았다. 2016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의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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