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SNS 문화의 확장에 따른 독서 문화의 쇠락과 출판사의 위기, 그리고 도서관의 부실한 운영 실태 등등 책의 위기를 조성한 환경적 요인에 대한 지적이 자주 거론된다. 이번에 출간된 『세상에 왜 도서관이 필요한가』(교유서가)는 기본적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동기를 제시한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과의 싸움

책의 주요 내용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사회봉사를 위해 구청에서 2년 동안 임시직으로 근무하면서 우연히 도서관 건립을 담당하게 되었고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분투한 실제 경험담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상가 건물의 지하에 도서관을 건립하는 일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과의 싸움이었다. 또 제한된 예산 내에서 실내장식과 도서 구매를 비롯한 여러 현실적인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론 결국에는 해피엔딩이지만, 당연히 그 과정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가 맞닥칠 수밖에 없었던 조직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하며 명분을 중시하는 공무원 사회에 대한 이해와 적응(?) 과정도 경쾌하고 약간은 해학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포괄하는 범주는 그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의미가 있다.

우선 도서관의 기능적 측면에서 의외로 고려할 부분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과 독서 보조 시설을 마련하는 일은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안시(西安市) 베이린구(碑林區)라는 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비첩(碑帖)의 확보는 예산과 도서 관리의 문제에 맞부딪친다. 그 와중에 저자는 자연스럽게 서예와 청동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의 소질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백미는 도서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이다. 목록 범위에는 무협 소설과 만화, 애니메이션, 종교, 사진,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중요한 서적들이 언급되고 있다. 더불어 관련 분야 전문가와 철학자, 식물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예술철학과 장애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 현지 조사 등이 정확하게 일반 독자의 호기심을 건드리는 선까지 한정되어서 절대 가볍지 않게 서술된다. 저자의 신중한 선택이 진행되는 동안 책에서 거론한 작가들과 도서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적어도 고등학교와 학부생 수준의 독자들에게까지 필독서로 권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질적 수준을 확보하고 있으며,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서가 나와 있기도 하다.

형식과 권위주의 공무원 사회 풍자도

특히 상당히 구체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희극적인 여러 사례를 통해 제시되는, 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저자가 처음 접하는 공무원 사회의 모습은 일종의 풍자적 해학이다. 효율을 강조하면서도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고 심지어 비실용적인, 성과 위주의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체계는 성년을 대부분 비교적 자유로운 학계에서 보낸 작자에게는 낯설면서도 당황스러운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당(黨)'의 권위를 내세워 국민-시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고위 공직자―중국식 표현으로는 '지도자(領導)'―들의 모습과 심지어 도서 구매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한,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시하는 부패의 고리도 딱 허용되는 수준에서 그만큼의 강도로 폭로된다.

경쾌한 문장 안에 절대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담은 이 책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양념처럼 섞여 있는 시안과 산시(陝西) 지역의 다양한 먹거리와 무형 문화유산, 자원봉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이 더해져서 상당히 맛깔스럽다.

홍상훈 인제대 교수·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