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터뷰]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박윤미 작가

"130일 간 유럽 113개 책장 여행
책 읽고 서사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났죠"

도서관닷컴 승인 2024.07.23 09:59 | 최종 수정 2024.10.06 23:34 의견 0

대단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오롯이 여행을 위한 준비였다니.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은 유럽 24개 나라, 50개 도시를 여행하며 113개의 책장을 관찰한 책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책장 곁에는 늘 책 너머의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읽는 이가 순간이동으로 마치 책장 유럽열차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채롭고 풍성한 사진들은 시독(視讀)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책은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왔을까. 칠월의 어느 날, 분당의 한 커피숍에서 부창부수(婦唱夫隨)의 한 커플을 만났다. 부부는 공격수와 수비수가 잘 어우러져 연승연승하는 환상의 콤비플레이어처럼 보였다. 책담(冊談)은 대표저자 박윤미 작가와 나눴다.

아이들에 더 넓은 세상 이해 위해 떠난 여행

_'모모 파밀리아' 저자명이 독특하네요.

'Family' 어원인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에서 차용했어요. '모모'는 두 아들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이고요. 남편(정인건)을 포함해 가족 넷이서 함께 펴냈다는 의미인거죠. 연구원인 남편은 가족 여행을 위해 큰맘 먹고 육아 휴직을 냈습니다. 제가 책장 여행을 기획하고, 남편이 모든 걸 뒤에서 백업하고, 두 아들은 사진의 모델 겸 '생각거리' 글쓰기를 했습니다. 결국은 두 아들이 여행의 주인공인 셈이죠.

2023년 6월부터 10월까지, 130일 간의 유럽 체험여행. 지난 10년간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값지고 눈물겨웠던 노력들. 독립군이 군자금을 모으듯 여행 자금을 모으려고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던 인고의 세월. 이 모두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이해시키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_책 여행을 하게 된 동기,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용기'의 다른 이름이 '무모'라고 한다죠. 책 컨셉은 출발 6개월 전에 최종 결정했습니다. 공유서가(내곁에 서재)를 운영하는 부부가 권유하셨고, 이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아이들(현재 초등 3학년, 초등 6학년)도 책과 도서관,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안성맞춤이었죠. 아이들은 책장 놀이를 흡사 백사장에서 조개껍데기를 발견하고 보물을 찾은 듯 기뻐했습니다.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책을 주제로 가족이 대화했던 시간은 우리 가족 모두의 그릇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문해력(文解力,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방점을 두고 싶어요. 두 권의 책을 쓰면서 읽기보다 쓰기에 몇 배는 더 문해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문해력은 사람을 이해하는 코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이들도 여행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문해력이 크게 향상되었어요.

여행 경비는 상투적 질문이 될 것 같아 좀 망설였다. 작가는 미소 지으며 "모범 답안이 없다"며 "자동차 한 대 값입니다"라고 오컴의 면도날처럼 명쾌하게 결론 냈다. 그 차량은 소형차일 수도 있고, 대형차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값어치를 매기는 것이 아닌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는 "여행을 하던 기간에는 코로나19 이후여서 숙박비 등이 계획보다 약 천만 원 정도 더 지출된 것 같다"며 보충 설명을 해줬다.

비하치 도서관, 아날로그 서점, 카사나텐세 도서관(왼쪽부터)


비하치 공공도서관 "이런 국빈 대접은 처음"

_인상 깊었던 도서관, 서점, 사서를 꼽는다면.

오프런하는 서점 등 진귀한 경험들이 많았어요. 재밌는 건 기대를 내려놓을 때마다 어김없이 반전이 우릴 기다린다는 것이었어요. 도서관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의 '비하치 공공도서관'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보스니아 내전'이 떠오르는 그곳은 크로아티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EU 국가도, 유로를 쓰는 나라도 아니었어요. 국경을 넘는 스릴이 있었고, 비하치는 전형적인 농가의 향기를 풍기는 지역이었어요. 도서관은 노란 외관의 3층짜리 건물로 도시 중앙에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어요. 아마도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방문자가 아닐까 싶어요. 사서들은 저희들을 국빈 대접하듯 친절하게 대해주었어요. 그래서 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요. 영어 능통자인 젊은 여자 사서는 우리만을 위해 도서관 투어를 시켜주었어요.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이런 국빈 대접은 처음이야"라고 외쳤죠.

오스트리아의 부부가 운영하는 아날로그 서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곳은 고객에게 차 한 잔을 권하거나 사탕이 가득한 손바닥을 내밀며 아날로그식 인사를 건네는 색다른 서점이어요. 부부 모두 영어에 능통해 외국인 손님을 가만두질 않고 이것저것 묻고 답하며 공감대를 만들죠. 고객 맞춤형의 특출난 서비스가 아주 탁월하죠. 우리에게 책장에서 K-POP 책 한 권을 꺼내 들고는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는 식입니다. 쾌활한 농담을 건네는 주인장의 태도에 기어이 책을 살 수 밖에 없었죠.

사서들 대부분은 친절한 편이어요. 그중에서도 로마의 카사나텐세 도서관의 사서 시모나를 잊을 수 없어요. 여행 막바지에 들른 도서관에서 신선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어디서도 본적 없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사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시모나는 도서관의 책과 거기에 놓인 지구본‧동상‧작은 조각 하나에 담긴 역사부터 심지어 지동설‧천동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박한 지식을 풀어 설명해 주는 그야말로 프로페셔널 사서였어요. 우리는 지금도 로마하면 시모나로 통할 정도로 그 이름이 떠올라요.

_유럽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하철이나 공원 벤치, 해안가 등에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어요. 수십 군데의 유럽 도서관에서 공통으로 보고 느낀 것이 있다면 그 어느 곳도 아동관을 구색만 갖추는 모양새로 대충 지어놓은 곳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동을 위한 전문 사서를 두고, 활동지나 놀잇감을 넉넉하게 배치해 놓고, 특화된 인테리어를 적용하면서 활동을 통해 책을 친화적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공간 곳곳에 가미했습니다. '실내 정숙'과 같은 표지판은 상상하지 못하도록 일반 열람실과 분리한 자리에서 소음을 허락합니다. 도서관이란 놀이터보다 더 놀거리가 많은 신나는 장소로 다가오게 하는 노력인거죠.


곳곳에서 독서삼매경…도서관은 신나는 장소

역사가 살아 숨쉬기에 책장 만한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책 앞에 모두는 평등하다. 작가의 이력에서 도서관과의 접점은 없다. 대학에서 환경학을 전공한 이과생이다. 그렇기에 관외자가 보는 책장의 시각은 더 뚜렷하고 각별했다. 미국 유학을 떠났고, 한국에서 아주 조금은 유명했던 영어 강사라는 이력을 가진 엄마 작가. 불혹의 나이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번 책을 포함해 3권의 책을 펴냈다. 첫 책은 출판사 100곳에 투고했고, 두 번째는 50군데, 이번엔 20분 만에 연락이 왔다. 그만큼 책이 보들보들하고 토실하다는 얘기다. 파밀리아가 방문한 책장들은 하나같이 그 이름만 들어도 여행 욕구가 샘솟는다.

'책이 있는 곳에선 늘 새로운 서사가 기다린다.' 글향(響)이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김규회 선임기자

저작권자 ⓒ 도서관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