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인, 최익현 외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
(전송열, 허경진 편역 / 돌베개 / 372쪽 / 1만8000원 / 2016년 7월 25일 초판 1쇄 발행 / 2016년 8월 15일 초판 2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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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은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팔도의 명산 20곳을 유람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으로, 정원림의 《동국산수기》를 저본으로 하여 여러 문인의 유산기(遊山記)를 모은 선집이다.
조선 선비들이 산과 물을 찾는 목적이 건강을 위한 등산보다는 자연을 감상하고, 그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의 기록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지혜와 사유를 담고 있다.
조윤제 선생은 『국문학개설』에서 "옛 시조에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중(中)에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하리라'라고 한 바와 같이 절로 된 영원한 자연 그대로를 즐기면서 자연 간에서 절로 자라는 몸을 그 자연 가운데 던져 자연과 더불어 절로 늙어 가리라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자연관이요, 동시에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었다"고 했다.
정병욱 선생은 「한국문학에 나타난 자연관」에서 "한국인들은 그들의 문학 활동에 있어서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고 관찰하여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인간 속으로 끌어들여 관념화된 자연, 관조 속에서 이루어진 자연, 따라서 철학적인 자연을 읊었다고 하겠다"고 했다.
선비들은 산수유람을 통해 자연의 도(道)를 깨닫고 자연과 더불어 늙어가려는 자연관을 드러냈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 관찰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내 몸을 자연에 의탁함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자연을 인간 속으로 끌어들여 관념화시키고 철학적인 자연을 읊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퇴계 이황 등 일군의 성리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선비가 자연을 그대로 따라 하나가 되는 것이나 선비가 자연에게 배워서 하나가 되는 것 둘 다 자연과 내가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같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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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산, 4천 리를 뻗어 온 아름답고 웅혼한 기상 :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마침내 지팡이를 짚으며 천왕봉에 올랐다. (...) 동쪽을 바라보니, 대구의 팔공산, 현풍의 비슬산, 의령의 도굴산, 밀양의 운문산, 산음의 황산, 덕산의 양당수, 안동의 낙동강이다. 서쪽을 바라보니, 무등산은 광주에 있고, 월출산은 영암에 있고, 내장산은 정읍에 있고, 운주산은 태인에 있고, 미륵산은 익산에 있고, 추월산은 담양에 있고, 변산은 부안에 있고, 금성산과 용구산은 나주에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소요산을 바라보니 곤양임을 알겠고, 백운산을 바라보니 광양임을 알겠고, 조계산과 돌산산을 바라보니 순천임을 알겠고, 사천의 와룡산을 바라보니 정유재란 때 명나라의 동(董) 장군이 패한 것이 생각나고, 남해의 노량을 바라보니 이순이 나라 위해 죽은 것이 슬프다. 북쪽으로 안음의 덕유산, 전주의 모악산이 단지 하나의 작은 개미집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큰 아이처럼 조금 더 솟아나 있는 것이 성주의 가야산이다. (...) 아! 덧없는 인생이 가련하구나! (...) 이 봉우리야 하늘 아래 하나의 작은 물건에 불과할 뿐이거늘 이곳에 올라서 높다고 여기는 것이 어찌 거듭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pp27~30
"내 발자취가 미친 모든 곳의 높낮이를 차례로 매겨본다면 두류산이 우리나라 제일의 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일 인간 세상의 영화를 다 마다하고 영영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오직 이 두류산만이 은거하기에 좋을 것이다. 이제 돈과 곡식과 갑옷과 무기와 같은 세상 것들에 대해 깊이 알아 가는 것은 머리 허연 이 서생이 다룰 바는 아니리라. 조만간에 이 벼슬 끈을 풀어버리고 내가 생각한 애초의 일을 이룰 것이다. 만약에 물소리 조용하고 바람소리 한적한 곳에 작은 방 한 칸을 빌릴 수 있다면 어찌 고흥의 옛집에서만 나의 이 지리지(地理志)를 쓸 수 있겠는가!" pp43~44
한라산, 말, 부처, 곡식, 사람을 닮은 산 :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
"이 산은 백두산을 근원으로 하여 남으로 4천 리를 달려 영암의 월출산이 되고 또 남쪽으로 달려 해남의 달마산이 되었으며, 이 달마산은 바다를 넘어 5백 리를 달려 추자도가 되었고 또 5백리를 건너서 한라산이 되었다. 이 산은 서쪽으로 대정현에서 일어나 동으로 정의현에서 그치고 그 가운데가 불쑥 솟아올라 정상이 되었는데, 동서가 200리요 남북으로는 100리가 넘는다." pp52~53
"산세가 굽었다 펴지고 높았다 낮아지면서 마치 내리달리는듯한 것은 말과 비슷하고, 높은 바위와 층층의 절벽들이 빽빽하게 늘어서서 공손히 절하는 듯한 것은 부처와 같다. 평평하고 넓으며 멀리 흩어져 활짝 핀 듯한 것은 곡식과 닮았고, 북쪽을 향해 곱게 껴안은 듯한 수려한 자태는 꼭 사람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말은 동쪽에서 나고, 절은 남쪽에 모여 있으며, 곡식은 서쪽에서 자라기에 적절하고, 뛰어난 사람은 북쪽에서 많이 나며 나라를 향한 충성심도 남다르다고 한다." p53
두타산, 골짜기가 깊고 수석이 기묘하여 : 김효원(金孝元, 1542~1590), 「두타산일기」(頭陀山日記)
"천하에 산수로 이름난 나라로는 우리나라만 한 데가 없으며, 우리나라에서 산수가 이름난 고을로는 태백산맥 동쪽의 영동만 한 곳이 없다. 영동의 산수 중에 기이한 절경으로 이름이 난 것은 금강산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두타산이다. 그 산의 근원이 백두산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달려 철령이 되고, 금강이 되며, 설악이 되고, 대관령이 되었다. 움푹 파인 곳은 계곡이 되고, 우뚝 솟은 것은 산봉우리가 되었다. 문득 선 것, 급하게 기울어진 것, 가파르고 험준한 것, 비스듬히 뻗어 나간 것 등 한두 가지 형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두타산은 삼척부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그 골짜기가 깊고 수석이 기묘하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지가 오래되었다." p56
"물을 보고 산을 보면서 여러분은 또 무엇을 얻었는가? 옛사람들은 사물 하나를 보더라도 거기에서 취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 다만 탐구하고 토론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하지 않았네. 시냇물이 콸콸 흐르며 밤낮으로 쉬지 않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켜서 그런 것이겠는가. 가는 것은 가고 오는 것도 끊이지 않는 것은 천기(天機)의 운행이 참으로 이와 같기 때문이지. 만일 이것이 한 순간이라도 멈추어버린다면 그 맥이 끊어져서 시냇물이 말라버릴 것이라네. 오늘날의 공부하는 자들이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밤낮으로 삼가 그 행동을 조심하기를 한 순간이라도 멈추지 말아야만 할 것이네. 그렇지 않고 만일 오로지 애쓰던 그 공력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이어져온 그 공부의 힘이 금세 다 폐해지고 말 것이니, 이는 깊이 두려워해야만 할 것이네. 산은 그 푸른빛을 받아들여 천고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듯, 군자도 그 산의 모습을 보고서 명예와 절조를 갈고 닦아 우뚝하게 홀로 선 자를 생각해야 하네. 또 산은 웅장하게 솟아올라 한 쪽에 버티고 서 있으니, 군자가 그러한 산의 위용을 보고 중후하여 쉬 옮겨가지 않아 모든 사물을 안정시키면서도 마치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하는 자를 생각해야 할 것이네. '산과 숲은 궂은 것을 감추어준다'는 도량에서 나의 가슴 넓힘을 배우고, 맑고 서늘한 기운에서 나의 누추함과 더러움을 씻어버릴 것을 배우게 하지. 또 게으름과 타락에 떨어지고, 경박함과 조급함으로 성을 발끈 내며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애걸복걸하며 스스로를 구차하게 여기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산과 물의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일세. 나는 나와 동행하는 사람 중에 만일 산수의 이러한 면모를 본받지 않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와 절교하고 북을 치면서 그를 비난할 것이요, 그가 스스로 그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난 뒤에라야 이를 그만 둘 것일세. 그러니 나의 이 말을 소홀히 듣지 말게." pp64~65
월출산, 옛사람들이 소금강이라 불렀으니 : 정상(鄭祥, 1533~1609), 「월출산유산록」(月出山遊山錄)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큰 바위, 미친 듯 내리달리는 시냇물과 깜짝 놀랄 만한 폭포가 모두 우리의 눈을 놀라게 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 모양들이 달리는 듯, 머무르는 듯, 싸우는 듯, 절하는 듯, 용이 날고 호랑이가 뛰는 듯, 봉황이 춤을 추고 난새가 나는 듯 했다. 또 그 가운데는 금이나 옥을 치는 듯한 소리와 거문고를 켜는 듯한 소리도 들려와 보는 눈을 압도하고 듣는 귀를 울려대어, 마치 천지가 개벽할 무렵에 조물주가 막 재주를 부리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p73
치악산, 산은 깊고도 험준하고 암자는 높고도 고요하니 : 안석경(安錫儆, 1718~1774), 「유치악대승암기」(遊雉岳大乘菴記)
"치악산은 원주에 있다. 산봉우리들은 가파르면서도 두터우며 계곡과 골짜기가 맑고도 깊다. 봉우리들은 다 이름이 나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높은 봉우리는 비로봉으로 다른 여러 산에 비해 더욱 높다. 이름난 절로는 남쪽에 상원사가 있고, 북쪽에는 대승암이 있으며, 대승암 아래쪽에는 구룡사가 있다." p81
"아아! 세상의 즐거움 중에 이것들과 바꿀만한 것이 있단 말인가? 이 산은 이미 깊고도 험준하고 이 암자는 높고도 고요하니 옛 책을 읽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p84
관악산, 연주대가 구름과 하늘 사이로 우뚝 솟아 :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
"연주대가 구름과 하늘 사이로 우뚝 솟아 있어서 내가 있는 곳을 다 돌아보아도 천하 만물 중에 감히 그 높이를 겨룰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사방의 뭇 봉우리들도 시시하여 비교할만한 것이 못되었다. 오직 서쪽 저편에 쌓인 기운만은 넓고 아득하여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하늘을 보면 바다 같고 바다를 보면 하늘과 같아 보일 뿐이니 그 누가 하늘과 바다를 분간할 수 있겠는가?" pp89~91
묘향산, 산수의 즐거움은 마음에 있나니 : 조호익(曺好益, 1545~1609), 「유묘향산록」(遊妙香山錄)
"이곳은 땅이 높아서 이슬이 떠다니고, 저 아래엔 안개가 끼어 하늘 높이 맑게 피어 오르며, 그 맑고 찬 기운이 사람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마치 날개가 돋쳐 신선이라도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다. 어찌 신선이 노니는 곳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물어보았더니, 이곳의 이름이 정말 천선대(天仙臺)라고 하였다. p112
다시 영신암(靈神庵)으로 돌아왔다. 골짜기에서 바람 소리가 솨솨 나고 산빛이 점차 옅어지더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시냇가의 구름이 조각조각 피어올라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온 산을 뒤덮어 버렸다. 큰 산은 상투처럼, 작은 산은 눈썹처럼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말렸다가 펴지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온갖 모양을 다 연출했다. p119
세상에는 북주(北周)의 시인 유신(庾信)처럼 멋진 동산에 있으면서도 도회지의 시끄러움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춘추시대 제나라의 분주한 재상 안자(晏子)처럼 집에 있으면서도 자연의 그윽함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그 때문에 산수의 즐거움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다. p127
청량산, 작은 산 중에서 신선과 같은 산 :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훗날 송재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긴 바 있다. "안중사(安中寺)에 홍 선생(홍언충), 황 정승(황맹헌) 그리고 내가 있었건만 / 병오면 그때의 일들은 어느새 아득해져 버렸네 / 살다가 죽는 것이 인간 세상 다 서글픔 뿐인데 / 울창한 솔숲에 내리는 봄비만이 밤새 쓸쓸하구나" p139
"김생굴에 이르렀다. 벼랑에 설치해 놓은 사다리가 썩고 끊어져서 그냥 손으로 넝쿨을 부여잡고 이끼 낀 벼랑을 기어서 올랐다. 몸이 흔들리도록 오르는데 몹시 두려웠다. 굴은 큰 바위 아래에 있었다. 그 바위는 아주 웅장하고 높으면서도 아늑하게 감싸는 듯하여 마치 하늘에서라도 내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폭포가 그 바위 위에서 흩어지듯 떨어져 내렸고 그 소리는 시끄럽게 싸우는 것 같았으며 대낮인데도 비가 내리는 듯했다. 누군가 나무에 홈을 파서 그 폭포수의 물을 받아서 마실 수도 있도록 해 놓았다." p145
무등산, 최고봉은 푸른빛을 띤 채 우뚝 서 있고 :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유서석록」(遊瑞石錄)
저물녘에야 입석암(立石庵)에 도착했다. 중국 명나라 문인 양사기(楊士奇)가 "열여섯 봉우리가 절을 숨겼구나"라고 읊은 것이 바로 이곳을 가리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암자 뒤에는 괴이하게 생긴 바위가 첩첩이 쌓였는데 우뚝우뚝한 것이 마치 봄에 죽순이 다투어 머리를 내미는 듯라고, 밝고 깨끗하기로는 연꽃이 막 피어난 것과도 같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큰 덕을 지닌 자가 높은 관을 쓰고 홀(笏)을 잡은 채 공손하게 절하는 것 같고, 닥서서 보노라면 마치 겹겹의 성문이 있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또 수많은 철갑 속에 그 하나만을 숨겼다가 우뚝 솟아나 그 어디에도 의지하는 것이 없어 형세가 더욱 홀로 빼어나니 마치 세상과 단절한 선비가 무리를 떠나 홀로 외로이 가는 것과도 같았다. p162
천관산, 팔전산, 조계산, 모후산이 모두 눈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규봉암의 빼어난 경치가 이 무등산에 있는 모든 암자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이라면, 이 광석대의 경치 또한 규봉에 있는 열 개나 되는 대(臺) 중에서 가장 빼어나 남쪽에서 제일가는 경치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p169
소백산, 시냇물이 옥띠 두른 나그네를 비웃네 : 이황(李滉, 1501~1570),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죽계구곡(竹溪九曲)을 따라 10여 리를 올라가니, 골짜기가 그윽하면서도 깊고 숲과 골짜기가 곱고도 아늑한데 간간이 돌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만이 골짜기를 울리며 들릴 뿐이다. p181
석름봉과 자개봉 그리고 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8~9리 사이에는 철쭉꽃이 숲으로 이루며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그 아리따움에 마치 비단 병풍 속을 지나는 듯하고 불의 신인 축융(祝融)의 잔치에 취한 듯해 참으로 즐거웠다. 봉우리 위에서 술 석 잔을 마시고 시 일곱 편을 짓고 나니 해는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다. 옷을 털고 일어나 다시 철쭉꽃으로 숲을 이룬 사이를 따라 내려와서 중백운암에 이르렀다. p184
내가 본 것을 차례대로 엮고 또 기록하는 것은 훗날에 이 산을 유람하는 자들이 나의 글을 읽고 느끼는 점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니, 이는 또한 내가 주세붕 선생의 글을 읽고 느낀 것과도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p191
변산, 다 담을 수 없는 기묘한 광경들 : 심광세(沈光世, 1577~1624), 「유변산록」(遊邊山錄)
진선대에 올라서 사방을 바라다보았다. 푸르스름한 몇몇 점이 서해에서 나왔으니, 군산도 · 왕등도·구위도와 같은 여러 섬이다. 고운 눈썹을 칠한 듯 남쪽으로 한 줄기 비스듬히 뻗어 나간 것은 백암산·내장산·선운산과 같은 여러 산이다. 먼 곳은 바다가 아득히 펼쳐져 있고 파도도 눈 끝까지 펼쳐졌으며, 가까운 곳은 늘어선 고을이 뒤섞여 들판에 가득차 보인다. 동북쪽으로는 뭇 봉우리가 빽빽하게 서 있고 절벽들은 하늘 높이 솟아 푸른 빛과 비취빛을 끌어모으는데, 봉황이 나는 듯 난새가 춤을 추는 듯 다 그 자리 앞에서 한없는 찬탄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p200
이 마천대는 진선대와 견줄 만하다. 대체적으로 진선대는 서남쪽으로 치우쳐 있고, 마천대는 동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때문에 시야가 제각기 한쪽으로만 향하게 된다. 그러나 눈길이 닿는 것은 대략 서로 같다. p204
백두산, 아름다운 금수강산 우리 이 땅에 : 서명응(徐命膺, 1716~1787),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
대체로 백두산의 한 줄기가 동남쪽에서 꺾여 보다산, 마등령, 완항령, 설령이 되고, 설령부터는 서북진이며 길주가 그 아래에 있다. 설령 북쪽에는 참두령과 원봉이 있으며 갑산은 그 아래에 있는데, 이 두 봉우리는 모두 남관과 북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또 갑산에서 남병영까지는 마덕령, 후치령, 관령이 있는데, 겹겹으로 쌓인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어서 오가는 데만 해도 5~6일이 걸린다. 그래서 만일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아무리 빨리 알리려 해도 알릴 도리가 없다. p212
산봉우리들을 내려다보니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며 뽀족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한 것이 마치 파도가 치면서 구름과 안개에 싸여 저 아득히 먼 곳부터 서로 손을 맞잡고 밀려오는 듯했다. 몸을 돌려 두 봉우리가 갈라진 사이에 서니 봉우리 아래 500~600길 정도 떨어진 곳 가운데에 넓고 평탄한 큰 못이 놓여 있다. 그 둘레가 40리는 되는데 물이 깊고 푸르러 하늘빛과 한 색을 이룬다. p221
금강산, 백옥 같은 수천만 봉우리가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동유기」(東游記)
처음에는 길이 막혔다 싶더니 갑자기 다시 열리고, 한 봉우리를 보고 있나 했는데 어느 샌가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났다. 이처럼 갈마들며 나타나는 봉우리, 열렸다 닫혔다 하는 골짜기, 구불구불 휘돌아 나가다 옆으로 비스듬이 나가는 시냇물 등 변화가 무궁무진했다. p236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흰 구름이 깨끗하게 다 사라지고 세상에서 일컫던 바로 그 일만 이천 봉우리가 마치 손바닥 안에 든 것처럼 하나 하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과연 그 특이한 모양과 기이한 자태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전체가 백옥처럼 희고 깨끗하며 그 정교함은 손으로 새긴 듯하고 속된 기운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p239
진불암(眞佛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깊고 묘하며 그윽함이 남달라 지금까지 봐 온 암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암자 앞에는 작은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유독 그 빼어남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옥으로 박산(博山)의 모양을 새겨 놓은 것 같았다. 그 이름을 물었더니 수미봉(須彌峯)이라고 했다. p241
내금강이 바위가 많고 흙이 적다면 외금강은 흙이 많고 바위가 적다. 따라서 바위가 많은 내금강은 희고 가파르며 흙이 많은 외금강은 푸르고 웅장하니, 이 점이 내외 금강산을 구분하는 특징이 된다. p246
구연동으로 들어갔다. 시냇물은 비를 만난 탓인지 급작스럽게 불어나 바퀴가 구르듯 내리흐르면서 바위 골짜기를 마구 흔들어댔다. 지난번에는 바위를 만나면 겸손하게 피해 가던 물이 오늘은 튀어 올랐고, 지난번에는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내더니 오늘은 변해서 몽땅 우레와 북 소리를 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마다 모두 기이하고 장엄하여 마음조차 마구 흥분되는 것이 엊그제와 같지 않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주위의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보다. p251
덕유산, 맑고 높은 기운과 웅장한 경치 : 임훈(林薰, 1500~1584),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
향적봉 이 봉우리는 이 산의 가장 높은 곳이어서 황봉과 불영봉 등은 다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팡이를 짚고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황홀하고도 아득하여 그 끝 간 데를 알 수가 없었다. (...) 향적봉의 뿌리는 조령에서 속리를 거쳐 직지를 지나 대덕으로 갔다가 초재의 서쪽에 이르러 거창의 삼봉(三峯)이 되니, 곧 이 산의 제일봉이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뻗어 가서 대봉이 되고, 또 서쪽으로 뻗어가서 지봉이 되며, 또 서쪽으로 뻗어 가서 황봉이 되고, 백암봉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서 이 봉우리가 된다. 이 봉우리가 가장 높고 황봉이 그다음이며, 불영봉은 또 그다음이 된다. p271
먼 산의 저 바깥에는 또 산이 있다. 다만 보이는 것은 구름과 안개가 휘감고 있을 따름이라 오랫동안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 형태가 갑자기 바뀌면 '이것이 바로 구름이구나'하고, 일정해서 변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산이구나'한다. 이러한데 하물며 산의 이름과 땅을 분별해 낼 수가 있겠는가! pp273~274
오대산, 중후하여 덕이 있는 군자와도 같으니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오대산기」(五臺山記)
앞마루에 앉아서 눈을 들어 보니, 구름 낀 산들이 저 수백 리에 걸쳐 끝이 없고, 멀고 가까운 산봉우리와 고개가 마치 신령처럼 금몽암을 에워싸며 보호하고 있었다. p286
대체적으로 이 산의 기량은 중후해서 덕이 있는 군자와도 같다. 대략 보아도 경망하고 날래며 뾰족하고 가파른 자태가 없으니, 이것이 뛰어난 점 중의 하나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숲 속의 거목 중 큰 것은 거의 백 아름이나 되어 구름까지 들어가 해를 가리기조차 하는데, 그 깊숙함은 첩첩이 쌓인 산과도 같았다. 청한자 김시습이 "풀과 나무가 무성하면서도 빽빽하여 속인이 드물게 온다는 점에서 본다면 오대산이 최고"라고 한 것이 또 뛰어난 점 중 하나이다. 암자가 숲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승려들이 어느 곳이든 하안거에 들 만하니, 이것이 또 뛰어난 점 중 하나이다. 샘물 맛이 다른 산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좋다는 것, 이것이 또 뛰어난 점 중 하나이다. 이러한 네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마땅히 금강산에 버금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pp291~292
금오산, 바람 타고 훨훨 신선 되기를 엿보노라 : 이복(李馥, 1626~1688), 「유금오산록」(遊金烏山錄)
약사봉으로 올라갔다. 봉우리의 형세는 곧장 하늘 가운데 내리꽂은 듯하면서 구름 속에서 불쑥 솟아올랐으니 바로 금오산의 최고봉이다. (...) 약사봉 앞으로는 상대할만한 적수가 없었고 그 뒤쪽으로도 마주할 만한 것이 없었다. p298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이 예전에 이곳을 찾았다가 지었다는 시를 외워 보았다. '대나무는 당시의 푸르름 그대로요 / 산은 옛날과 다름없이 높아라. / 청풍에 아직도 머리털 쭈뼛해지나니 / 누가 옛사람을 멀다 말하는가?' p303
"산을 유람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 있네. 그 첫째는 산의 큰 맥락을 보는 것이요. 둘째는 큰 형체를 보는 것이며, 셋째는 큰 효용을 보는 것이라네. (...) 이른바 큰 맥락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산들이 모두 장백산에서 뻗어 나오고 물도 이 장백산에서 흘러나와, 일어섰다 엎드리기도 하고 구불구불하다가 곧게 뻗기도 하면서 질서가 있고 또 얽히고설키면서 이어졌다가 끊어지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또렷하여 다 손가락으로 가리킬만 하다네. (...) 큰 형체라는 측면에서 산을 논한다면 약사봉 한 봉우리가 이 금오산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이 되어 두 눈을 문지르고 다시 보아도 바로 눈앞에 들어오지. 그리고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밥상을 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동의 유학산이요, 하늘이 낸 것은 칠곡의 가산, 대구의 팔공산이며, 멀리 구름속에서 언뜻언뜻 머리를 묶어 올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청송의 보현산, 경주의 함월산이라네." pp305~306
"산의 효용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에는 체(體, 근본)가 있어서 비록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쓰임새가 있게 마련이라네. (...) 이 금오산은 아주 높고 험준하여 마치 깎은 듯이 사방을 에워쌌으니 참으로 이른바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고 있을 뿐이건만 만 명이라도 그 관문을 열지 못한다'라는 말이 곧 이 산을 두고서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p308
가야산, 신선이 산다고 할 만큼 빼어난 곳 : 정구(鄭逑, 1543~1620),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
물이 이리저리 흩어진 바위 사이로 우레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마구 쏟아져 낼는데 대낮에 비가 흩날리는 것처럼 숲 속 외나무다리까지 물방울이 튀었다. 또 그 물이 혹 넓은 연못에 쌓이니 연못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산봉우리들은 우뚝 솟았고 골짜기들은 깊고도 그윽했으며 소나무와 전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절벽들은 가팔랐다. (...) 고운 최치원의 시 한 수도 폭포 옆 바위 면에 새겨져 있었다. '겹겹 바위에 쏟아지는 물 뭇 산봉우리 울려 대니 / 지척 간인데도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네. / 아마도 세상 시비 따지는 소리가 들릴까 하여 / 일부러 물을 흘려 온 산을 다 가두려고 하나 보다.' pp313~314
승려에게 "저 하늘 끝에 한 조각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었더니 두류산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뜰 가로 걸어 나와 보았다. 달빛은 밝아 대낮과 같고 산은 고요하며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찬 시냇물 소리는 졸졸거리며 들려오는데, 너무도 황홀하여 마치 내 몸이 어느새 저 세상 밖으로 나가 버린 것만 같았다. p316
삼각산, 흥겨운 피리 소리는 바람을 타고 : 이정구(李廷龜, 1564~1635),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영루(山映樓)의 옛터로 걸어서 내려갔다. 그리고 이어 향옥탄(響玉灘)을 찾아갔다. 무서리가 며칠 밤 살짝 지나간 때라 그런지 단풍잎이 물감을 칠해 놓은 것처럼 다홍빛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고, 푸른 소나무와 노란 국화는 시냇가와 골짜기에서 서로 그 고움을 다툼질하는 듯했다. 참으로 고운 비단을 펼쳐 놓은 것만 같은 세상이었다. p345
노적봉 아래에 이르렀다. 암벽은 가파르고 길은 경사가 심해 발붙일 곳이라곤 전혀 없었다. (...) 잠시 쉬면서 바라다보니 서남쪽의 큰 바다는 멀리 푸른 빛을 띠면서 구름 속의 석양빛에 온통 은빛 세계를 이루며 끝이 없다. 내 시력을 한껏 다 뻗쳐 보지만 너무도 아득하여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수락산, 아차산, 관악산, 청계산, 천마산, 송악산, 성거산 등의 여러 산이 마치 개미집처럼 첩첩이 포개져 있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pp346~347
마치 한(漢)나라 때의 신선 유안(劉安)으로 인해 유행한 "흰 구름 속에서 닭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니, 바로 신선이 산다는 진일(眞一)과 삼청(三淸)의 세계에서 꿈처럼 노니는 듯하구나"라는 시구처럼 황홀해졌다. (...) 흥이 다하면 산을 내려가는 법이다. 술병의 술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돌아가는 길은 지름길이었던지 잠깐 사이에 절에 도착했다. p348
속리산, 기이하고도 빼어나다 일컬어지니 : 이동항(李東沆, 1736~1804), 「유속리산기」(遊俗離山記)
태백산의 한 줄기가 천 리를 내리 달려서 영남과 호남의 허리에 걸터앉아, 초목이 무성하며 크고도 이름난 산이 셋이다. 이 세 산(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중에서도 속리산이 가장 기이하고도 빼어나다고 일컬어지니, 변방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산이 바로 이 산이다. p352
중사암(中獅庵)으로 올라갔다. 암자는 이 산의 끄트머리에 있어서 높이가 이미 이 산 높이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기부터 산의 형세가 가파르고 바위들이 험준하였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백석정(白石亭)이 눈에 들어왔다. 정자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하게 서 있었으니 참으로 문장대(文藏臺)의 진면목이었다. (...) 상대(上臺) 위에는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큰 웅덩이가 있는데, 여름에 장마가 지면 이 구덩이에 물이 넘쳐흘러서 세 물줄기로 나뉘어 흐른다. 즉 북쪽 모서리로 넘쳐 흐르는 것은 용화(龍華)로 들어가서 괴강(槐江)의 근원이 되고, 동쪽 모서리로 넘쳐흐르는 것은 용유(龍遊)로 들어가서 낙강(洛江)의 근원이 되며, 서쪽 모서리로 넘쳐흐르는 것은 석문동(石門洞)으로 들어가서 금강(錦江)의 근원이 된다. p354
한참을 앉아 있자니 바람이 점점 더 거세어졌고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마침내 대에서 내려와 오던 길을 가다가 중사암에 이르렀다. 암자의 승려가 맞이해 주면서 우리의 노고를 위로하며, 다행히도 날씨가 맑아 유쾌하게 구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을 축하해 주었다. 시냇물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와 두 바위 문을 지나서 법주사에서 잤다. 생각해 보니 마치 열자(列子)가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다 돌아온 것만 같았다. p356
태백산, 산이 깊고 신비하여 세상에서 보기 힘든 곳 :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
주막의 주인 남후영(南後榮)을 만나보니 모습이 순박하고 말이 진실하였다. 그가 이 산의 지형과 경관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였다. "이 태백산은 세 개의 길과 열두 고을 가운데 들어앉아 있습니다. 동북쪽에서 관동 지역까지는 강릉·삼척·울진·평해·영월·정선이 있습니다. 이 중 삼척의 소나무는 널을 짜기에 알맞고 인삼의 품질도 아주 좋습니다. 남쪽으로 넘어가면 영남의 여러 고을로 안동·봉화·순흥·영천·풍기가 있습니다. 이 중 봉화는 왕조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있어서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며, 순흥(영주)은 부석사로 유명합니다. 호서 지역으로는 네 고을이 있습니다만 이 중 영춘(단양)이 가장 빼어납니다. 영춘은 이 산의 서쪽 줄기에 위치하고 있지요. 그리고 산봉우리 중 높은 것으로는 천의봉·상대봉·장산봉·함박봉이 있고, 이름난 물로는 황지·공연·오십천이 있습니다. (...) 이외에도 이 산이 깊고 신비하며 세상에서 보기 힘든 곳이라는 점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pp362~363
산이 아주 높고 험준한지라 석양빛이 저 아래에 머물러 있었고, 그 거꾸로 비치는 빛이 산 위에서는 옅어져서 아주 기묘한 광채가 되었다. 양쪽 언덕의 바위들은 마치 용의 등에 돋아난 비늘처럼 줄지어 불쑥불쑥 일어나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듯했다. p364
황지의 물은 빠르게 수십 리를 흘러간다. 하지만 공연의 물은 세차게 분출하면서 입구를 잘 떠나지 않았으며 깊기로는 황지와 같았다. 그러나 물이 입구를 나오기 시작하면 왼쪽의 물과 합해져 큰 물결을 이루면서 힘차게 남으로 내리달려 낙동강이 되었다가 바다로 들어간다. 태백산의 볼거리로는 이 공연에 이르러서 기묘함의 극치를 이룬다.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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