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변호사로 활동한지 10년째인 2015년 『성범죄 사건, 경찰조사에서 합의, 재판까지 사건별 시간별 대응전략』(지식공간)을 출간했다. 당시 가해자(피의자, 피고인)의 입장에서만 기술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억울하게 성범죄 피의자, 피고인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에 관한 전략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형사사건을 포함한 모든 법률문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와 상대방,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에서 시작이 되다보니 양 당사자의 전략을 모두 균형 있게 담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은 아쉬움에 성범죄 피해자의 입장에서 효과적인 피해구제 및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찾아 행사까지 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하다 집필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2022년 2월 출간된 『변호사님, 이게 성범죄 피해자 맞나요?』(탬)라는 책이다.
최근 10여 년간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고, 각종 성범죄 관련 규정들이 재정비됐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강화'에만 중점을 뒀을 뿐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배려는 나아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불쌍하다', '안타깝다'라는 걱정 내지 동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실질적 피해회복과 배상에는 인색하다.
피해자에게 일상생활 중 불미스러운 신체접촉이나 불편한 성적 농담을 들어도 이것이 성범죄인지,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사건인지, 민사상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거나 소속기관의 징계만을 물을 수 있는 성희롱인지를 구분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없다.
저자가 피해자 법률상담 해보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지 말지부터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첫 발부터 내딛기가 힘든 것이다. 2013년 6월 19일부터 모든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폐지됐다. 그러나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의 단 둘만 있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경찰에 신고할지 말지 피해자의 선택문제로 남아 있다. 성범죄는 실제 피해자 신고나 고소가 없어 사실상 수사나 재판을 통해 처벌되지 않는 비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범죄 피해자를 단순히 '배려'의 대상이나 '약자'로 여겼으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성범죄 피해자로 남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알고 전략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잃어버린 나의 권리를 되찾고 소송에 대응할 것인가. 이 책의 출발점이다. 특히 가해자에 대한 유죄 및 처벌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해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정확히 피해자로 확정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에 대한 무혐의, 무죄판결이 나면 피해자가 아닌 무고나 위증죄의 가해자로 바뀔 수도 있다.
형사사법절차는 기본적으로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을 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자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즉, 벌어진 그대로의 사실보다는 '보이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형사소송은 결국 '진실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게임은 잘하는 사람이 이기기 마련이지만, 상대가 못해서 이기기도 한다. 이러한 상대방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정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냉혹한 게임에서 이긴 이후에 진정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고, 가해자에게 엄벌이나 합당한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힘든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해 진정한 피해자를 넘어 승자가 되길 희망한다. 아울러 성범죄 피해를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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