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의 첫 소설 '졸망제비꽃'이 20년 만에 개정증보판 '우리가 사랑한 천국'으로 돌아왔다. 개정증보판에는 긴 시간 '졸망제비꽃'을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저자의 바람을 담아 새로운 스토리를 더해 한층 더 묵직한 의미를 선사한다.

충청도의 작은 마을 미봉리를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소설은, 인생의 페이지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스럽고 따듯한 시절로 우리를 안내한다.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깊은 호흡과 밀도 높은 서사로 그려져 가슴 뭉클한 추억을 소환한다.

우리가 커서 아저씨 아줌마가 됐을 때도, 똥산 아줌마가 남기고 간 웃음을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똥산 아줌마는 어쩌면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해. 말없이 천국의 웃음을 전도하고 떠난 천사 말이야. 이 세상에도 천국이 있다는 걸 웃음만으로 보여준 천사… 똥산 아줌마… 아줌마는 천국에 살면서도 졸망제비꽃을 보러 올 거야… 나는 졸망제비꽃이 피는 여기도 천국이라 믿어볼 거야. 여기가 천국으로 가는 하나뿐인 비밀의 문이라고도 믿어볼 거야._224쪽

이윤학의 수채화 같은 문장은, 한 편의 장편 서정시로 우리의 가슴을 물들여주며 일상의 언어로 비일상의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무엇 하나 온전히 꽃 피우기 어려웠던 시절 그 척박한 폐허의 군락지에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 기대어 삶을 피워낸 온기 가득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우리가 손안에서 비벼온 오이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한 천국'은 우리의 천국이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가 사랑한 시간에 여전히 꽃 피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저자 이윤학은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지훈문학상, 김동명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작가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나를 울렸다', '짙은 백야',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곁에 머무는 느낌', 산문집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장편 동화 '왕따',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 '나 엄마 딸 맞아?' 등을 썼다.

김규회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