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사이] 행복추구권과 작은 행복감 느끼기

도서관닷컴 승인 2021.12.01 16:32 | 최종 수정 2022.07.07 18:0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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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로 추측되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생전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 성실과 노력으로 큰 부를 일궈냈다는 진부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으나, 유독 뇌리에 남는 부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가난하고 온갖 일을 다 해봤기에 ‘지금도 시원한 나무그늘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전 세계에서도 내노라 할 정도로 큰 부자였으니 그런 말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궁핍하고 힘든 시절을 겪어낸 사람 중에 그런 말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점을 보면, 그 분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행복관이 부럽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이와 같은 나의 소회를 말하자, 한 분이 최근 로또복권 3등에 당첨된 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평소 복권이란 것을 돈 주고 사본 적이 없기에 잘 몰랐는데, 로또복권의 당첨번호 6개 중 5개가 일치하면 3등이라는 것이다. 그 자체로도 놀랍고 대단한데 그 분은 너무나 아쉬워서 며칠째 속내를 앓았다고 한다. 왜 그런가 들어봤더니 1등 당첨금이 15~17억원이고, 당첨번호 5개가 일치하고 보너스 숫자 1개 일치하는 2등 당첨금이 7000~8000만원인데, 당첨번호 숫자 1개가 부족한 3등 당첨금이 겨우 약 150만원이라고 한다. 단 1개의 숫자를 맞추지 못한 것 치고는 당첨금이 너무 적어 야속하고 아쉬운 생각도 들만도 하겠다.

그 분은 내 이야기를 듣고서야 3등 당첨의 기쁨과 행복감 보다 아쉬워만 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는지 혼자만의 비밀로 해두었던 당첨사실을 고백한 것이었다.

행복이란 말이 법과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는 ‘행복추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 유래는 미국 버지니아 권리장전 및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비롯된다. 1980년 헌법 개정으로 처음 규정이 된 행복추구권은 여러 논란이 많은 규정이다. 아무리 추상적인 공동체 가치나 지향점을 규정하는 것이 헌법이지만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막연하고 불명확해 기본권으로서의 법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권이 아닌 행복 ‘추구(the pursuit of happiness)권’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를 보면, 행복을 뜻하는 영어 철자를 일부러 i가 아닌 y로 되어 있다. 이런 의도적인 오타제목은 영화 내에서 주인공 아들이 다니는 허름한 어린이집 건물 벽에 적힌 낙서에서 비롯된다. 행복의 주체가 주인공(i) 아닌 다른 사람(y)들이라서 주인공의 암울한 불행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1980년대 경기불황에서 어린 아들과 지하철 공중화장실에서 노숙을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하고 궁핍한 상황을 이겨내 큰 경제적 성공을 이룬 크리스 가드너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어찌 보면 진부한 내용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 영화 주인공이 미국 독립선언서 속 ‘행복추구권’을 떠올리며 “행복을 추구한다고 적어놓은 건 행복을 성취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토마스 제퍼슨도 알았다는 걸테지”라고 비관하며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논하기 이전에 그 어떤 힘든 순간에서도 작은 행복감이라도 느낄 수 있는 소박하고 긍정적인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박원경 법무법인 천명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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