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은] 여름 해변에 누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을 꿈꾼다
<한 컷 한국사
-사진으로 시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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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3 17:39 | 최종 수정 2024.01.0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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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에서 역사 사진은 본문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조하는 자료다. 그래서 유물이나 유적, 인물 사진이 특히 많다. 역사의 한순간을 담은 사진은 사료로서 가치는 크지만, 솔직히 말해 좀 밋밋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국사 수업을 하는 역사 교사들이 만났다. 사진을 주인공으로 할 수는 없을까? 한 장의 사진으로 그 시대를 이야기해 볼 수는 없을까? 이런 의문과 포부에서 이 책의 집필은 시작됐다.
사진을 고르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담뱃대를 들고 맥주병을 안고 있는 조선인 사진처럼 낯선 사진도 넣었지만, 신미양요 사진처럼 교과서에서 자주 보았던 사진도 넣었다. 대신 보조 자료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대접했다. 탐정처럼 사진에서 단서를 찾아 상황이나 현장을 재현하고, 사진이 품고 있는 사연을 찾았다.
열 명의 필자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함께 집필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중학교 한국사,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를 집필한 경험이 있어 청소년 독자들이 읽고 학부모님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 성인 독자는 학창 시절에 배웠던 '국사' 지식이 있으니 쉬울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E. H. 카가 말했듯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즉 '현재'에 의해 대화 내용은 계속 바뀐다. 글은 쉬워 보여도 20~30년 전에 배운 내용이랑 꽤 다를 것이다.
"어? 이런 사진이 있었네?", "이 사건을 이렇게 볼 수도 있네!", "아! 이 사진에는 이런 역사가 숨어 있었구나"라고 감탄사를 연발할지 모른다. 너무 좋아서 이불킥이 나올 수도 있다. 열 명의 필자들은 각자 쓴 원고를 돌려 읽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역사 교사로서 열 명의 색깔이 드러나면서도 독자들이 읽을 때는 한 명이 쓴 것처럼 느껴지도록 다듬었다. 친한 지인이 나 혼자 쓴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혹시나, 책에서 열 명의 색깔을 느낀다면, 당신을 진정한 역덕으로 인정.
만약 당신의 여행 가방에서 '한 컷 한국사'가 나온다면 일행들은 뭐라고 할까. 아마 역덕 소리를 들을 것이다. 여행 와서 머리 아프게 딱딱한 역사책이나 읽는다고 타박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가볍게 꺼내 볼 수 있는 구성으로 역사책을 만들고 싶었다. 역사가 시간의 흐름이라고는 하지만 관심 가는 내용부터 봐도 되고, 시간 없으면 읽다가 끊어도 되고, 손 가는 대로 아무 쪽이나 펼쳐서 바로 볼 수 있는 그런 역사책을 고민했다.
치열한 논의 끝에 사진 한 장을 놓고 몇 쪽씩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딱 한 페이지에 담기로 했다. 어느 쪽을 펼치든 왼쪽에는 역사의 현장을 전해 주는 사진을, 오른쪽에는 사진이 담고 있는 시대상을 역사 교사의 시선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하루 5분, 시 한 편 보듯이 역사를 만났으면 한다. 다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은 이번 여름휴가엔 역사책을 가방에 넣는 상상을 해 본다.
대표저자 조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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