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기관이야기] 북방문화박물관: 니카타현 대저택, 사립박물관 1호

도서관닷컴 승인 2022.07.15 10:59 | 최종 수정 2022.07.21 10:47 의견 0

북방문화박물관은 니가타현 대지주였던 이토 가문의 대저택이 1949년 극적으로 박물관으로 거듭난 장소다. 이곳은 집안의 7대손 이토 후미요시가와 미군 라이트 중위의 특별한 인연으로 일본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 지정된 아주 특별한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라이트 중위 일행이 저택 내 구 일본군의 은닉 물자가 있다는 정보로 가택수사를 하러왔다가 대화 중 후미요시가는 중위의 펜실베이니아대 선배임을 알게 됐다. 이후 라이트 중위는 이토 가문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 부농의 대저택은 점령군의 농지개혁 계획에 따르면 '집단주택'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화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던 라이트 중위는 이를 남겨야 할 문화유산으로 규정하고 맥아더 원수에게 건의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전후 사립박물관 제1호가 되는 '북방문화박물관'이 설립(당시 이름은 '사적문화진흥회')된 것이다.

박물관은 이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칸센 야외박물관 일곽의 북방박물관과 당시 문화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 등 지성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문화'라는 단어를 도입해 1952년 명칭을 '북방문화박물관'으로 변경했다. 다다미방이 60개가 넘는 니카타현의 전통적 대저택을 보존하면서 당시 상류집안이 사용한 옛 생활 집기와 소장 컬렉션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우키요에 등에 대한 예술품에 대한 주제 발굴을 통해 정기적인 전시와 지역 문화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니가타의 대표적 부농의 대저택이 집단주택으로 전락될 운명에서 극적으로 박물관으로 변신한 '북방문화박물관.' 박물관이 후세를 위한 문화적 장소로 보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은 한 사회의 기억기관이 다양한 스토리를 품으며 현재의 의미로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라이트 중위는 그의 유언에 따라 북방문화박물관 정원에 비석과 함께 묻혔다.

글·사진=박미향 와세다대 방문학자

저작권자 ⓒ 도서관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