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콩콩. 쿵'
자정 즈음, 때로는 새벽 한두 시, 어느 땐 더 늦게까지 아니 아침까지 들리는 소리.
맨 꼭대기층, 도대체 윗집에서는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처음에는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그런가 하면서 참아내던 아래층 남자는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소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거기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절대' 그 집 문에는 이런 경고문이 커다랗게 쓰여 있고, '문에 전단지나 메모를 붙이지 마라. 관리실은 물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연락하려고 하지 마라' 등이 문 주변 벽까지 온갖 경고의 문구들이 가득했다. '이를 어길 시 법적 조치' 운운까지 하면서.
남자는 생각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일까. 남은 잠도 못 자게 해 놓고 정작 본인들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겠다는 게'.
앞으로 이 남자에게 벌어지는 황당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출발점이었다.
남자는 위층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 헤매고,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는 자기 집을 놔둔 채 월세를 내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뭐 이야기 전개가 이래?' 하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어? 내가 소설을 읽고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든다. 목차에는 제목이 없다. 1부, 2부, 3부, … 8부, 에필로그만 있을 뿐. 그저 번호가 매겨진 글들이 나열되어 있는 산문집인 줄 알았더니, 한편의 콩트인 듯 중편소설인 듯 느껴진다. 주인공 남자가 지은이인지 가공의 인물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위층 남자가 운영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냉면집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기억 속의 강릉 '즈므' 집 냉면 맛과 같고. 층간 소음 따위는 잊을 만큼 맛있는 냉면을 먹으러 다니며 비법 전수를 핑계로 주인을 만나려고 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그러다가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아주 독특한 연애를 하고.
작가 프로필은 딱 두 줄이다. '1971년 서울 출생. 『보통의 존재』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등 출간'. 그런데 작가는 뮤지션 이석원이다. 본인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구분하고 싶어한다고 한다던데…. 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였던 그 이석원이다.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몰랐다. 소설가는 아닌 것 같은데 깔끔하면서도 감수성 짙고, 시크하지만 뭔가 인간미 있고, 가슴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문장들에 반하고 있었는데.
소설을 읽듯 다음 전개를 궁금해하며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때론 미스터리 소설의 범인 찾기처럼 다양한 상상을 하기도 하면서.
일상을 일상이 아닌 듯,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치고 들어온 상황을 자기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이석원 작가에게 홀딱 빠졌다. 너무 늦게 이 작가를 보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의 지난 책들을 주문하며 미안한 마음을 달래보련다. 아니 또 그의 문장 속으로 푹 빠지련다.
김찬희 객원 북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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