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지폐에는 역사 인물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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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닷컴 승인 2023.05.09 09:24 의견 0

돌고 도는 돈. 화폐는 물건을 거래할 때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공통의 언어다. 이 언어는 나라마다 다르다. 화폐를 보면 역사가 보인다. 문화사의 축소판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으로 유통된 최초의 화폐는 조선시대 숙종 4년(1678년)의 상평통보(常平通寶)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지폐 고액권은 1914년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 당시 80㎏짜리 쌀 11가마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1973년에는 지폐 1만 원권이 발행됐다. 이 최고액면인 1만 원권은 34년 동안 지존의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2009년 6월 발행된 5만 원권이 1만 원권을 제치고 36년 만에 새로 발권된 최고액권으로 자리매김했다.

지폐 인물은 누구인가.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이후 나온 지폐 1호 인물은 이승만(李承晩·1875~1965) 대통령이다. 그해 8월 발행된 1000원 권에 처음 등장해 1950년대 말까지 지폐 모델을 독점했다. 지폐 모델이 역사 위인의 초상으로 바뀐 것은 1960년부터다. 세종대왕(1397~ 1450)이 처음으로 1000환권(1960년 발행), 500환권(1961년 발행)에 등장했다. 그는 당시 최고액권인 1만 원권(1973년 발행) 모델로 선정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기에 율곡 이이(李珥·1536~ 1584)가 5000원권(1972년 발행),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500원권(1973년 발행),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1000원권(1975년 발행)의 지폐 모델로 합류했다. 5만 원권에는 현모양처로 귀감이 되는 조선 중기 서화가인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 초상이 들어가 있다. 신사임당은 아들 율곡과 함께 모자가 화폐 모델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폐에 누구를 담을 것인가는 당대에 늘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지폐에 담긴 인물은 그 나라의 역사를 반영한다. 역사 인물은 지폐의 권위와 신뢰감을 높여주고, 국제적으로 나라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준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역사 인물이 지폐 인물의 단골 소재로 선택된다.

우리나라 지폐는 역사 인물 일색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1962년 발행된 100환권에는 무명의 모자상(母子像)이 등장한다. 한복 차림을 한 젊은 엄마가 색동옷을 입은 아들과 저금통장을 들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지폐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에게 저축 심리를 고취하기 위해 제작했다. 이 100환권 지폐는 제3차 화폐개혁으로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면서 아쉽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5일짜리(1962. 5. 16.~6. 10.) 최단명 유통 화폐였다. 등장인물 역시 지폐 역사상 가장 단명한 모델로 기록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상 또는 가상의 인물도 그려졌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발행된 100원권의 대흑천상(大黑天像)이 있다. 대흑천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신이다. 삼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 즉, 부처님·부처님 말씀·부처님 제자를 말한다. 대흑천은 실제 인물이 아닌 상상 속의 인물이다. 1915년 발행한 1원권,5원권,10원권에 넣은 관을 쓴 긴 수염의 수노인(壽老人) 역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가상의 인물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화폐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을 굳이 치자면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발행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선 후기 별전(別錢)에는 범부에 불과했지만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나온다. 별전은 공식적으로 유통된 화폐가 아니라 기념주화의 일종. 성희를 즐기는 네 쌍의 모습이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묘사돼 있다.

지폐는 한 나라의 얼굴이다. 나라 밖에서는 국기보다 더 자주 노출된다. 그런데 지난해 손상된 지폐 규모가 4억1268만 장에 달했다. 금액은 총 2조6416억 원이었다. 이들 지폐를 위로 쌓아 올리면 에베레스트산 높이(8849m)의 15배다. 나라 돈을 깨끗하게 쓰자.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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