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앙일간지 미국 특파원은 서울에선 도서 연체료가 하루에 권당 100원씩 붙는 곳도 꽤 있는데, 한 곳에서 휴관일이라도 걸려 연체료를 못 내면 다른 도서관에서 대출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과연 기자의 기억대로 현재도 그럴까? 필자가 직접 서울시 소재 공공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 190곳(2021년 말 현재)을 조사해봤다.
공공도서관 중 연체료를 받는 곳은 서울시교육청 22곳, 성동구 7곳, 동대문구 8곳, 마포구 4곳 등 모두 41곳. 전체의 22% 정도다. 이곳도 무조건 연체료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출정지가 원칙이나 제한 조치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부득이하게 연체료를 선택하는 경우다. 결과를 보면, 기자가 말한 것처럼 서울에서 연체료를 받는 공공도서관이 꽤 있다고 하는 것에는 좀 무리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대출도서 연체 방지를 위한 현황 파악이나 정책에 관해 도서관계 내부에서조차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연체 방지를 위한 조사나 연구로 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연구소가 수행한 <공공도서관 대출연체 방지 및 회수율 향상 방안 연구>(연구책임자;정현태, 2009)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꾸준한 도서관 건립과 통합대출 등이 늘어나면서 전체 도서관 대출 건수가 현저히 증가했다. 동시에 분실이나 회수 불능 등 사고 가능성도 함께 증가했다. 이전의 개별 도서관 단위에서 발생하던 대출 연체나 분식, 미회수 등의 업무가 지역 내 도서관 자원 공유와 공동 활용으로 확대·정착됐다. 이로 인한 도서관간, 또는 다른 도서관 이용자와의 관계에서까지 문제 발생이 늘어났고 대출 실무자들에게 적지 않은 심적 부담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본 연구는 도서관간 상호대차 등 대출 협력을 촉진하고 대출서비스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명확하게 규정되고, 그 처리 절차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이 실제 도서관 현장에서 어느 정도 도입되고 정착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 연구 이외에도 강영구의 <국내 대학도서관 대출 규정에 관한 조사; 연체 규정을 중심으로>(사대도협회지, 2008)도 있으나 다른 도서관 대출도서 연체와 연체료에 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도서 미납 땐 장서 관리 등 큰 불편함
문제는 대출도서가 제때 반납되지 않은 경우 이를 회수하기 위해 도서관과 담당자는 적지 않은 행정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와의 갈등이나 분쟁 등이 발생하고 있어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도서관 장서는 공공의 재산이다. 도서관은 그 책들을 잘 관리할 책무가 있다. 대출된 도서가 제때 반납되지 않을 때 장서를 온전히 보존, 관리해야 하는 공직자로서의 책무성이 작용한다. 도서관은 대출도서 연체나 미회수 상황에 매우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대출정지 정도의 조치로는 연체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고, 연체료를 부과하면 오히려 도서관 이용을 제약할 수도 있어 마땅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일부 이용자들이나 도서관 입장에서는 대출정지보다 연체료를 선호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도서관 입장에서는 대출도서 반납이 늦어지면 운영에 부담되기 때문에 연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반납일이 도래하기 전에 주기적으로 미리 반납을 독려하는 문자를 발송하는 등 도서 반납을 자발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때로는 이용자 사정으로 나중에 연체된 도서를 반납할 경우 대출정지 등의 조치를 유예해 주기도 한다. 여러 도서관은 '도서관주간(4월 12일~18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4월 23일)', '독서의 달(9월)' 등 주요 연례행사 때 연체된 도서를 반납하면 대출정지를 해제하고 있다.
미국은 3월 첫째 주(2023년은 3월 5일~11일)를 '대출도서 반납주간(Return the Borrowed Books Week)'로 정하고 도서를 제때 반납하도록 독려한다. 이 주간은 1953년 캘리포니아 세인트메리병원 사서였던 한 수녀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그는 나중에 유명해진 제자에게 도서관 이용자들이 빌려간 책을 늦게라도 반납해 다른 사람도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홍보해 달라는 청탁을 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미국 등에서는 대출도서 연체로 도서관 이용에 주저하거나 제약을 받지 않도록 도서 반납을 유도하는 여러 노력들을 하고 있다.
'도서관 정보나루'에서 도서 대출 데이터 제공
이젠 대출도서 연체를 방지해 도서관의 가치도 지키고 이용 시민들의 편의도 증진시킬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도서관들에서 대출도서 연체와 그에 따른 조치 상황이나 결과의 효과성 등에 대한 의미 있는 데이터나 자료는 미진하다. 즉 대출도서 연체나 장기 미반납 등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관심 있는 조사, 연구 등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도서관들이 대출도서 연체 예방이나 관련 조치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해서는 정확한 조사와 분석을 정기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개별 도서관 단위에서도 적절한 데이터 확보와 분석을 진행해야 하겠지만 우선 '도서관 정보나루'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도서관 정보나루'는 우리나라 도서관 대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제공해 주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빅데이터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전국 차원에서 대출도서 연체와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해 도서관 현장에서 다양한 분석과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국의 뉴포트 뉴스 공공도서관의 경우 연체자는 총 이용자의 1%에 불과하지만 5년간 손실로 처리된 자료 총액이 약 40만 달러로 거의 연간 자료구입비와 맞먹는다. 이처럼 도서관 연체료 부과 정책은 목적 실현에 거의 효과가 없다. 오히려 공공도서관이 지향하는 시대의 가치인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해야 하는 도서관 서비스의 기본적인 이념 실행에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공공재인 도서관 책을 개인이 독점하거나 사유를 용인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식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연체료라는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 오랫동안 용인되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서관이 연체료라는 금전적 조치를 이용자에게 부과할 경우에는 엄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연체료가 행정법상 과태료(의무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부과·징수되는 금전으로서 행정질서법의 일종)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개별 법령(지방자치단체 조례 포함)에서 규정해야 한다. 현재 「도서관법」이나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관련 조례에 그러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현행 「도서관법」 제48조 1항은 '공공도서관은 그 이용자에게 이용료 등을 받을 수 있다'로 규정하고 2항에서 이용료 등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서관법시행령」 제34조에서 이용료 등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출도서 연체에 따른 연체료나 분실 또는 훼손 도서에 대한 변상금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명확하게 이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면 「도서관법」 제48조 1항에 이용료와 함께 과태료 개념을 추가하고, 「도서관법시행령」 제34조에도 대출도서 연체나 분실, 훼손에 따른 과태료를 명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과태료 부과 조치에 대해서는 「도서관법」 벌칙 조항에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위임하거나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법 개정 이전까지의 「도서관법」 제33조(사용료) 조항에는 '공공도서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이용자에게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공립 공공도서관의 사용료는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가산점 부여 등 합리적인 대출 방안 찾아야
도서관에서 대출 권수나 기한을 정해두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별 도서관들의 장서 규모가 크지 않고, 자료구입비도 충분하지 않아 이용 요구가 많은 도서의 경우에도 복본을 충분히 구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충분히 책을 읽고 활용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도 대출도서 연체가 발생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들도 어느 정도 장서 규모를 확보하고 있고, 대출 업무도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 이전보다 훨씬 용이한 측면 등을 고려하면 대출 업무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즉, 대출 권수나 기한 등을 보다 늘리거나, 좀 더 광역의 단위에서 대출 관련 규정을 통일시켜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다른 방안은 도서관을 활발하게 이용하는 시민에게는 지속적으로 가산점을 부여해서 대출 권수나 기한을 늘려주는 것이다. 즉, 처음 도서관 회원에 등록하고 도서를 대출하는 경우에는 1권이나 2권으로 제한하고, 일정 기간 또는 횟수 동안 연체 없이 잘 반납하고 대출한 경우에는 권수를 늘려준다. 이용자가 이런 도서관 이용의 큰 이점을 알게 되면 대출한 도서는 꾸준히 제때 반납하게 될 것이다.
일부 도서관에서는 도서 대출에 마일리지를 제공해서 책 구입 등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도서 대출과 반납을 잘하는 경우 역시 그에 따른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미 그런 시도를 하는 도서관도 있고, 통합대출의 경우 대출 권수를 확대해 주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대출 책수를 2배로 늘려주고 있으니 기술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그런 제도 시행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시의 '책읽는 서울광장'이나 '광화문 책마당'이라는 야외 도서관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2023년 4월 23일 개장 이후 31일간 운영한 결과, 야외도서관에서 제공한 1만 여권 장서 중 분실도서는 17권(0.1%)에 그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야외에 책을 내놓아도 가져가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높아졌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서관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도서관들은 시민의 힘을 믿고 책을 이용하는데 심리적 또는 경제적 제약이 될 수 있는 조치들을 없애 더 적극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한국도서관사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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