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법칙] 가까워지고 싶지만 적당한 거리를 둔다

도서관닷컴이 전하는 법칙 이야기

도서관닷컴 승인 2023.07.24 18:44 의견 0

가까워져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렇다고 관계가 먼 것도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에게 더 편할 뿐이다.

왕조시대의 왕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천하를 호령했다. 왕은 하늘이고, 백성은 땅이었다. 왕의 말이 곧 법인 세상이었다. 그런 왕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왕이 낳은 첩의 자식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 왕은 본부인에서 낳은 자녀 외에도 후궁을 통해 많은 자녀를 두었다. 이 때문에 치열한 치맛바람의 권력투쟁이 피바람을 몰고왔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금상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온갖 수단이 다 동원됐다. 왕은 자신의 존엄에 상처가 되는 줄을 알면서도 '피는 물보다 진한'똑같은 자식이었기에 별 도리가 없었다. 조선시대 왕 중에 연산군, 광해군, 경종, 선조, 인조, 영조, 고종 등 서자(庶子)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왕이 적지 않다. 왕은 적자라고 해서 대놓고 편애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첩의 자식이라고 해서 내치지도 못했다. 왕은 서자에 관한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이렇게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심리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아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9)의 우화인 '고슴도치 이야기'에서 차용했다. 고슴도치의 행동습성에서 비롯된 용어다. 고슴도치 몸은 빽빽한 가시로 둘러싸여 있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인 셈이다. 그런데 이 가시가 딜레마로 작용한다. 고슴도치들은 추운 날씨에 온기를 나누려고 몸을 기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가시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추위에 견디기 힘들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인간의 애착형성의 어려움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현상을 통해 외부로부터 따뜻함을 구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타인에게 상처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md Freud, 1856~1939)에 의해 심리학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유사한 의미의 '호저 딜레마(Porcupine’s dilemma)'라는 말도 있다. 호저는 몸에 뾰족한 가시털이 빽빽이 나 있는 동물. 날씨가 추울 때는 서로 체온을 나눔으로써 몸을 녹이지만, 몸이 녹은 뒤에는 가시털이 찔러 상처를 나게 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상대방을 찌르는 가시털 때문에 떨어져 지낸다. 가까울수록 서로 미워하고 상처주는 일이 많이 생기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비유한 용어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에서 잘 나타나는 '민모션 증후군(Minmotion Syndrome )'이라는 용어도 있다.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거나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자신의 울음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으려는 심리다.

인간관계에서 '고슴도치 딜레마'는 흔하게 일어난다. 둘 사이는 원만한데 일만 같이하면 부딪친다. 그런 문제 때문에 둘은 고민이 많다. 고슴도치형 인간은 인간관계 초기부터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를 방어하려는 심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늘 자기를 감추고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한 부류의 고슴도치형 인간은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고 자기의 삶과 자기 일에만 몰두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다. 또다른 고슴도치형 인간은 인간관계를 멀리해 혼자가 되면 외로워지고, 너무 가깝게 지내면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는 사람들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신만의 온기로 추운 겨울을 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가까울수록 서로 미워하고 상처 주는 일이 많이 생긴다. 너무 편하다보니 공사를 구분못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친하지만 적절한 긴장감을 가지는 것도 좋다.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반복학습을 통해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다.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고 체온을 유지하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우리 몸에는 고슴도치와 달리 부드러운 털이 있다. 그것이 따뜻한 털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공자는 "유익한 벗이 셋 있고, 해로운 벗이 셋 있다(益者三友 損者三友). 정직한 사람과 신의가 있는 사람과 견문이 많은 사람은 벗으로 사귀면 유익하다. 편벽한 사람과 아첨하는 사람과 말재주만 있는 사람은 벗으로 사귀면 해롭다"고 말했다. 좋은 벗이 되기 위해서는 때론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것도 바람직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영원히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이 되어 버리면 곤란하다. 요즘엔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서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자기중심적인 고슴도치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너무 이기적이다보면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 결국 혼자 고립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자신은 단지 관계 맺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혹여라도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홀로 조각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람들과의 관계개선에 신경을 쓰자. 나와 다른 사람의 거리를 억지로 가까이 붙여 놓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찰떡궁합이 되는건 아니다. 친밀감을 갖기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장 맛은 오래 묵혀야 제 맛이 난다. 인간관계를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너무 서두르다 보면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져있는 듯하면 터놓고 얘기해보자. 그러다보면 해법이 보일거다. 인지상정은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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