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씨 없는 수박' 우장춘 박사가 개발?

도서관닷컴이 전하는 상식 이야기

도서관닷컴 승인 2023.07.20 20:35 의견 0

여름만 기다렸다. 여름 과일의 대장주는 뭐니 뭐니 해도 수박이다. 수박은 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요즘 수박은 정치 바람에 휩쓸려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식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함/ 동생이 하품을 한다/ 입 안이/ 빨갛게 익은 수박 속 같다/ 충치는 까맣게 잘 익은 수박씨(최명란 동시 '수박씨')

수박 하면 으레 검은 씨가 연상된다. 요즘은 씨 없이 아주 편하게 먹는 수박도 등장했다. 씨 없는 수박이라면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명성을 떨친 우리나라 육종학(育種學)의 황무지를 개척한 시대의 영웅이었다. 농림부장관직 제의도 거절했던 그는 우리나라 근대 농업을 개척한 공적을 인정받아 1957년 12월 제1회 부산시문화상(과학상), 1959년 8월 병상에서 건국 이래 두 번째(첫 번째는 음악가 안익태)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그는 1959년 8월 10일 향년 61세로 영면했다. 장례식은 전 국민의 애도 속에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실제 씨 없는 수박의 원조는 우장춘 박사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 박사와 친분이 있던 교토제국대학 기하라 히토시(木原均·1893~ 1986) 박사다. 그는 1943년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 기하라 박사가 주도했던 기하라 생물학연구소가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실험·생산해 발표했다. 우 박사보다 10년 정도 앞선다. 물론 기하라 박사가 우 박사의 논문 '종(種)의 합성(合成)' 이론을 참고했기 때문에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데 큰 공로를 세운 것은 사실이다.

우 박사는 일본에서 환국한 1953년 씨 없는 수박의 시범 재배에 들어가 1955년 한국농업과학협회 주도로 '씨 없는 수박 시식회'를 열었다. 한국에서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들어 시연했기에 일반인들은 그가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 생각했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좀 더 맛있고 우량하게 만들었다.

씨 없는 수박을 언급할 때 우 박사가 떠오르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우 박사가 국내에서 개량한 무, 배추 종자를 보급했지만 농민들은 정작 일본에서 밀수입한 종자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동안 사용해온 일본 종자에 대한 믿음과 우리 종자에 대한 불신이 겹친 탓이다. 농민들은 자칫 선례가 없는 국내 종자를 사용하다 농사를 망칠까 모험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 박사는 신품종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고자 이른바 '씨 없는 수박' 카드를 들고나왔다. 씨 없는 수박의 성공은 여러 작물의 종자 보급에 획기적인 촉진제로 작용했다. 이후 농민들은 우리가 만든 종자를 믿고 파종하기 시작했다. 뿌리 갚은 '불신'의 씨가 '믿음'의 씨로 변해갔다.

우 박사는 자신이 씨 없는 수박을 개발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대중들이 그를 최초 개발자로 인식했을 뿐이다. 당시 신문들은 우 박사에게 '육종학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붙여 대서특필했다. 이때부터 그는 씨 없는 수박의 발명자로 알려졌고 교과서에도 그렇게 실렸다. 교과서 내용은 1980년대 말이 돼서야 정정됐다.

씨 없는 수박은 비용도 많이 들고, 수확기도 늦었다. 재배하는 데도 손이 많이 들어갔다. 씨가 없어 먹기는 편했지만 당도가 낮아 맛이 없었다. 그런 이유 등으로 인기가 높지 않았다. 당시 씨 없는 수박은 값이 비싸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우 박사조차도 종종 "찬물에 채워둔 수박을 씨를 뱉어내며 먹어야 제맛이 나지. 씨도 없는 수박을 먹는 것은 점잖을지는 몰라도 어딘지 운치 없는 일"이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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