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충돌하는 욕망들, 우리 시대 우리 자신의 이야기

소설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정진영 지음‧332쪽‧무블‧1만6800원

도서관닷컴 승인 2024.01.18 09:05 의견 0

정진영 작가가 데뷔 13년만에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 소설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표제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를 비롯해 '선물', '징검다리', '네버 엔딩 스토리', '숨바꼭질', '시간을 되돌리면', '눈먼 자들의 우주', '사랑의 유통기한', '동상이몽', '안부', '동호회', '첫사랑' 등 12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소설들은 부동산 '영끌', 코인 투자, 재난지원금, 인공지능(AI), 중고거래, 실직, 학폭·왕따 문제, 지역통폐합, 부를 향한 욕망 등의 소재를 직설적으로 다루면서도 서사적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소설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우리 삶의 고단함과 그 속에서 욕망에 허덕이는 군상의 민낯들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럼에도 그런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서의 상호 이해와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미소 짓고 있었다. 지수의 입술 사이로 치아가 살짝 보였다. 지수가 그토록 싫어했던 덧니는 결혼 후 교정한 듯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치아 교정의 영향으로 미묘하게 달라진 지수의 턱선을 눈으로 훑으며, 나는 지수가 이미 오래전에 나를 떠난 여자임을 실감했다. 나는 상주의 자격으로 서 있는 지수의 남편과 맞절하고, 그에게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며 일어섰다. 그런데 그가 뜻밖의 말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을 압니다.” _p24.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저마다의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욕망의 민낯을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과 배려를 통해 작은 징검다리 하나를 놓는 일도 어쩌면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이를 담담히 일러준다.

김규회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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