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달 착륙 1호 우주선' 아폴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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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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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문 러시(Moon rush)' 경쟁이 연초부터 뜨겁다. 미국이 인류 달 탐사 레이스에서 선두로 치고 나왔다. 미국 우주기업 애스트로보틱은 8일(현지시간) 세계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 페레그린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하지만 이번 발사는 기술적 문제로 실패로 결론 났고 우주계획은 모두 순연됐다.
"우리가 떠나온 곳에 다시 갈 기회를 가진 젊은이들이 부러울 뿐이다." 미국 정부의 달 탐사 계획을 총지휘했던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가 1977년 65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남긴 말이다.
이에 앞서 1957년 10월, 미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터졌다. 일명 '스푸트니크 쇼크'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61년 4월 "가가린, 우주에 첫발을 내딛다!"라는 뉴스가 터졌다. 초반 기선을 제압한 소련은 첫 유인 우주비행에서도 미국을 압도했다. 27세였던 소련의 우주 영웅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Yuri Alekseevich Gargarin, 1934~1968)이 보스토크(Vostok) 1호를 타고 인류 첫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그는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고 우주에서 지구를 본 느낌을 전했다.
소련은 1963년 여성 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를 우주에 보내고, 1965년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우주 유영에 성공하는 등 최초의 기록들을 쏟아냈다. 급기야 미국은 대반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취임 연설을 통해 1960년대 말까지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전격 선포했다.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겐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1969년, 닐 암스트롱(1930~2012)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던진 일성(一聲)이다. 미국에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은 더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달 착륙 성공은 그동안 뒷북만 치던 미국이 스타워즈(star wars·우주전쟁)의 주도권을 쥐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1969년 7월 20일 일요일, 이글호는 '고요의 바다'인 달에 착륙했다. 암스트롱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다가 뛰어내렸다. 왼발이 먼저 달 표면에 닿았다. 19분 뒤, 이글호 조종사인 올드린이 뒤따라 달 표면에 내렸다. 둘은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고 그 앞에 섰다. 닉슨 대통령은 지구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하늘이 인간 세계의 일부가 됐다"고 감격했다.
달에 간 것은 암스트롱이 최초일까? 글쎄다. 제대로 된 의미의 '달 착륙'에 처음 성공한 것은 미국이 아닌 소련이다. 소련은 달에 인간을 보내는 대신 무인 탐사선을 보내 시료를 채취했다. 소련은 1966년 2월 무인 탐사선 루나 9호를 달에 먼저 착륙시켰다.
실제로 아폴로 11호 이전에 달에 간 아폴로 유인 우주선이 2대 더 있었다. 바로 아폴로 8호와 아폴로 10호다. 아폴로 8호는 1968년 12월 발사돼 지구 중력을 벗어난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다. 달 주위를 10바퀴 돌고 되돌아왔다. 윌리엄 앤더스, 제임스 러벨, 프랭크 보먼이 처음으로 달 주위 궤도를 돌고 귀환했다. 아폴로 10호도 달 주위를 돌다가 돌아왔다. 아폴로 10호는 달 착륙의 예행연습용으로 발사된 우주선이었다. 이 우주선에 탔던 우주 비행사 토머스 스태퍼드와 유진 서넌은 1969년 5월 달 착륙선을 타고 달 표면에서 수 킬로미터 근처까지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아폴로 11호 성공 후에도 아폴로 17호까지 5대의 아폴로 우주선에 모두 12명을 달에 내려놓았다. 달은 미지의 존재다. 전 세계 국가에 여전히 매력적인 탐사 대상이다.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지만 영원히 요람에 남을 수는 없다." 러시아 로켓 과학의 선구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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