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한국 자장면과 중국 자장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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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닷컴 승인 2024.03.16 15:25 의견 0
사진=도서관닷컴

2월 졸업식이 한창 열렸다. 1960~70년대에는 자장면이 귀한 음식이었다.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 자장면을 먹었다. 자장면도 하나의 졸업 선물이었다. 자장면집은 꽃다발을 든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자장면 한 그릇값은 1960년 15원, 1968년 50원, 1970년 100원, 1980년 350원, 1991년 1400원, 1990년대 후반 3000원대, 2000년대 5000원대였다. 지금은 가격대가 다양하지만 보통 7000원을 넘는다.

자장면은 '자장'에다 한자음 '면'을 결합해 만든 조어. 한자로는 작장면(炸醬麵). 된장(醬)을 기름에 볶아(炸) 국수(麵)에 얹어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영어는 'Boiled Noodles with Fried Bean Sauce(볶은 된장을 곁들인 삶은 국수)'다.

한국식 중화요리의 대표인 자장면. 자장면은 영화, 연극, 동화, 노래, 만화, 수필, 다큐 등 안 나오는 데가 없다. "그 냄새에 슬쩍 감염되면 지위고 체통이고 다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도 국가도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 냄새 앞에서는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다."(안도현 '자장면') 소설가 황석영은 "누군가 말하기를 자장면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야 어른이 된다는 데 우리 또래치고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가 없다"고 썼다.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자장면보다 검은 밤이 또 올지라도/ 자장면을 배달하고 가버린 소년처럼/ 밤비 오는 골목길을 돌아서 가야겠다/ 자장면을 먹으며 나누어 갖던/ 우리들의 사랑은 밤비에 젖고/ 젖은 담벼락에 바람처럼 기대어/ 사람들의 빈 가슴도 밤비에 젖는다/ 내 한 개 소독저로 부러질지라도/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정호승 '자장면을 먹으며')

'블랙 데이(4월 14일, 연인이 없는 사람들끼리 자장면을 함께 먹는 날)'도 생겼다. 자장면이 '국민 음식'이 된 데는 배달 문화의 상징인 '철가방'의 공도 적잖다. 2006년 문화관광부는 자장면을 '한국 100대 문화 상징'의 하나로 선정했다.

자장면의 맛을 결정하는 건 춘장(春醬)이다. 봄에 장을 담아 춘장이라고 했다는 설과 가을에 파종해 봄에 나는 대파를 찍어 먹는다고 해서 춘장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밀가루와 콩을 발효시켜 만든 춘장은 한국에서만 통용된다.

중국에는 한국식 자장면이 없다. 비슷한 이름의 면이 있어도 맛과 모양이 다르다. 춘장도 중국에는 없고 대신 면장(面醬)이라는 소스가 있다. 원산지는 산둥(山東) 지역이다. 중국 자장면은 삶은 면에 볶은 면장과 각종 야채를 얹어 비벼 먹는 전형적인 가정식 요리였다. 면장을 국수에 비벼 먹었다. 쉽게 말해 된장 막국수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여러 국수 중 한 가지에 불과했던 자장면이 우리나라에서 거둔 성공 신화의 비결은 뭘까. 1948년 산둥성 출신의 화교 왕송산(王松山)은 1948년 서울 용산에 '영화장유'라는 식품 회사를 세워 한국 최초로 면장을 생산했다. 제품명은 '사자표 춘장'. 1950년대 중반 왕송산은 텁텁한 면장에 캐러멜시럽을 섞기 시작했다. 이 춘장으로 만든 자장면은 자르르 윤기가 도는 달콤한 맛으로 단숨에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나라에서 자장면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산둥성 출신 화교들이 급증했던 19세기 말로 추정된다고 한다. 산둥 출신 화교들이 초기에 정착했던 제물포(인천)나 한성(서울)이 자장면 원산지의 유력한 후보지다.

춥고 어렵던 시절의 추억, 자장면. 그 검은색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달 밝은 늦은 밤,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리움과 같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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