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한국 메이저리그 진출 1호는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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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닷컴 승인 2024.03.22 13:54 의견 0
사진=도서관닷컴

'코리안 몬스터' 메이저리거 류현진(37)이 12년 만에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로 복귀했다. 류현진의 몸값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수준이다. 한화는 2월 22일 "계약기간 8년, 총액 170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류현진은 2013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LA 다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2023시즌까지 78승 48패 평균자책점(ERA) 3.27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수준급 선발투수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야구 고수들이 몰려든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1994년 한양대 재학 시절 LA 다저스와 입단계약을 맺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 박찬호는 1996년 4월 7일 새벽(한국시간) 2년 3개월간의 와신상담 끝에 한국 야구 사상 최초로 빅리그 첫 승의 감격을 맛봤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영양가 높은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6월 5일,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는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100승(73패, 2000년 18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100승의 쾌거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542번째, 현역으로는 40번째, 동양인으로는 일본의 노모 히데오(野茂英雄)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다. 또 박찬호는 2010년 10월 17시즌 만에 통산 124승을 거둬 노모(통산 123승)가 보유했던 아시아 출신 선수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다. 그래서 많은 야구팬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주인공을 박찬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역사는 5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도전에서 성공한 첫 사례다.

투수 이원국이 1969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68년 외국인 선수 정원 제한에 걸려 '야구 연수'라는 명목으로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해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당시 서울 중앙고 2학년생이던 이원국은 1965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탈삼진 17개를 기록하며 완봉승하는 등 한국 아마추어 야구 최고의 유망주였다. 3학년 때인 1966년 일본 프로야구 도쿄 오리온스(현 지바롯데 마린스)에 스카우트돼 백인천에 이어 한국인 2호 일본 프로야구 진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68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1년까지 샌프란시스코, 몬트리올 등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아쉽게 빅리거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1972년 멕시칸리그로 이적하면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최고의 기량을 펼쳤다. 멕시칸리그 11년간 통산 150승(85패)과 방어율 2.81이라는 큰 족적을 남겼다. 이원국은 1983년 3월 귀국해 MBC 청룡에서 1년간 뛴 뒤 은퇴했다. 이재우 전 OB 베어스 감독도 1972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입단해 트리플A까지 진입했다.

박철순도 1980~1981년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A팀에서 활약했다. 박철순은 이어 OB 베어스에서 뛰면서 미국에서 익힌 너클볼 등을 던지며 한국 프로야구(KBO) 원년(1982년)에 22연승의 신화를 일궈냈다. 1980년대 최동원, 선동열도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끌었지만 미국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거는 한국 야구 선수들의 꿈과 희망이다. 선배들의 도전은 박찬호, 류현진 등 코리안 스타 메이저리거의 탄생에 좋은 자양분이 됐다. 박찬호의 성공은 한국 야구의 유망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일시에 바꿔놓았다. 류현진이 한국 프로야구 리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새로운 한국인 빅리그 시대를 열었다.

올해는 KBO 최고 타자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1억1300만 달러의 계약으로 잭팟을 터뜨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인의 빅리그 도전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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