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미스코리아 1호' 6・25 전쟁 중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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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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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미스 춘향'이 탄생할까.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 미인대회인 춘향 선발대회가 올해부터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 기존에는 내국인과 해외동포만 참가할 수 있었다. 대회 참가 신청은 4월 6일 마감됐다. 본선은 춘향제 기간인 5월 15일 남원 광한루원에서 개최된다.
예부터 미색이 뛰어난 여인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유혹을 받았다. 미인대회는 인간만이 아닌 신들의 세계에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세 여신인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쓰인 황금 사과를 놓고 다퉜다. 결국 아프로디테가 역사상 최초(?)의 미인대회에서 월계관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미인대회는 미스코리아 대회다.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미혼 여성이 미스코리아로 선발됐다. 참가자의 평균 키는 1960년대 156cm, 1970년대 166.4cm, 1980년대 168.3cm, 1990년대 172.9cm로 점점 커졌다. 큰 키에 외적인 아름다움, 지성미까지 골고루 갖춰야 대표 미인으로 뽑혔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국내 최고, 최대 규모의 미인대회로 손색이 없었다. 미스코리아는 국제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이른바 '관직 없는 대사' 역할도 했다. 미스코리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탤런트, 영화배우, 아나운서 등 스타의 산실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TV로 생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획일적 미의 기준 강요', '외모 지상주의 조장', '여성의 상품화', '연예계 등용문으로의 전락' 등의 논란과 각종 악성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를 풍자한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급기야 2001년 MBC 방송을 끝으로 지상파 중계가 중단됐다.
우리나라 미인 경연대회는 한국전쟁 중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여성 경염대회(競艶大會)가 열렸다. 중앙일보(현재의 중앙일보와는 다름)는 전쟁의 암울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경염대회를 개최했다. 미혼 여성일 것, 키는 다섯 자 정도일 것, 몸은 깡마르거나 뚱뚱하지 않을 것, 얼굴은 둥그스름하고 복스러울 것, 치아가 반듯하고 하얗게 반짝거려야 할 것, 현모양처로서 품위가 있을 것 등이 심사 기준이었다. 본선에서는 비공개로 수영복 차림의 맵시를 심사했다. 숙명여대 재학생이었던 강귀희가 우리나라 미스코리아(당시는 미스 대한) 1호로 이름을 올렸다.
미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정식 대회를 연 것은 1957년이다. 대회의 가장 큰 목적은 미국에서 개최되는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파견할 한국 대표를 선발하는 것이었다. 첫 미스코리아 대회는 그해 5월 19일 서울 명동 시립극장에서 열렸다. 박현옥이 초대 미스코리아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 30만 환과 치마저고리, 목걸이, 은수저 등의 부상이 주어졌다.
정식 미인대회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보다 앞선 미인대회도 여럿 있었다. 1930년 월간 '삼천리'가 주최한 지상(誌上) 미인 선발 대회가 국내 미인대회의 효시로 칠 만하다. 파인(巴人) 김동환은 독자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사진을 통한 미인 선발 대회를 기획했다. 1940년에는 일본 여성지 '모던 니뽄'이 조선 여성을 대상으로 '미스 조선'을 선발했다.
그 후 지상 미인대회는 사라졌다가 해방 이후 다시 선보였다. 1949년 월간지 '신태양'이 인기투표로 '미스 대한'을 선발했다. 예심을 통과한 미인 사진을 크게 확대해 덕수궁 물에 전시해 놓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심사를 맡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명동의 다방 마담인 임현숙이 미스 대한으로 최종 낙점됐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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