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산발에 가까운 빨간 머리를 휘날리면서 한 여자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수레 한가득 책을 끌고서. 수레에 쌓인 책들은 자칫하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중 몇 권은 이미 떼구루루 굴러 떨어지고 있다.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 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눈을 떼지 못한다기보다는 아예 눈을 가리고 있다. 저러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쩌나.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함께 걸어가던 고양이도 불안한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유명 동화작가 사라 스튜어트의 책 <도서관(The Library)> 표지는 이렇게 심상치 않은 그림으로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화책은 30쪽에 불과하지만 그림 속 여자의 출생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동화의 주인공은 소녀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세상으로 나온다. 깡마른 체형에, 나쁜 눈을 가진 수줍음이 많은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오로지 책 읽기뿐이다. 그녀의 인생은 책을 읽고, 모으는 과정 그 자체다. 온 집안이 책으로 가득 차게 되자, 그녀는 평생 모은 책을 기증하고 도서관을 세우고 거기에서 여생을 보낸다.
책 읽기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서사. 저자는 이 짧은 동화를 통해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책 읽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책 읽기의 매력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저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책 읽기에 몰입하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동화를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책 읽기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해진다.
따로 또 같은 몰입의 즐거움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 속에도 책 읽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일생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장가로 알려진 이덕무(1741~1793)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박학다식했고 문장에도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서자(庶子)라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쉽게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면서 39세의 늦은 나이에 비로소 검서관으로 발탁됐다. 검서관은 책을 교정‧필사해 출판하는 일을 담당했던 관직. 그리 높은 직급은 아니었지만,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의 책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고, 서적 편찬 과정에서 학식을 발휘할 수 있어 그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의 자리였다. 그가 편찬한 서적들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상징하는 정조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이덕무의 삶도 책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날 저무는 줄 모르고 벽에 적힌 옛글을 읽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귀가하지 않아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기가 예사였다. 또한 아이들과 뛰어놀다가도 스스로 정한 책 읽는 시간이 되면 반드시 서재로 돌아가 책에 빠져들곤 했다. 그가 남긴 문집 <영처고(嬰處稿)>에는 자신을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看書痴)로 묘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동‧서‧남쪽으로 세 개의 창이 난 작은 방에서, 햇볕을 따라가면서 책 읽기에 몰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글에서 묘사하는 이덕무의 모습은 지금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이야기로 읽힌다.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이덕무가 이렇게 책 읽기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일까. 책 읽기의 어떤 매력과 효능이 이들의 삶에 작용한 것일까. 동화 속 인물인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책 읽기에 빠져들게 된 사연은 온전히 상상의 몫이다. 하지만 실존 인물인 이덕무는 이런 후대의 궁금증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 이유를 자신의 문집에 소상하게 밝혀 놓고 있다. 책 읽기는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가는 과정이고, 더 나아가서 배고픔, 추위, 근심과 걱정, 육체적 괴로움을 잊게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몰입에 빠져들면 일과 놀이의 구분 없어져
이런 몰입의 상태는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창의적으로 정의했다. 이는 '플로우(flow)'라는 특별한 명칭으로 부른다. 어떤 활동에 깊이 몰입해 시간과 공간, 더 나아가 자신까지도 잊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다.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또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는 고조된 순간이다. 몰입의 상태에서 의식은 경험으로 충만하고,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느끼고, 바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돼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바로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몰입을 맛본 사람들에게 일과 놀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이 되면서 흠뻑 그 재미에 빠지고, 그 결과 창의성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이덕무가 책 읽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바로 온전한 몰입의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 읽기는 지식에 대한 호기심에 불을 지피고, 지식과 나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하는 황홀한 경험이다. 도서관은 광활한 지식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책 읽기와 우리의 거리를 좁혀주고, 연결하는 기회의 땅이다. 도서관의 책들은 그 길목을 알려주는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심원한 질서와 원리, 생로병사의 깊은 고뇌, 사회 제도의 모순과 해결 방안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응축해서 만나게 된다.
이러한 만남과 몰입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 준다. 마침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 깨달음은 또 다른 몰입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책 읽기의 경험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지식의 창작과 연결되면서 또 다른 몰입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계속)
한성대 디지털인문정보학 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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