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미발견 석유의 절반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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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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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제7광구 검은 진주~"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정난이의 '제7광구'의 옛 노랫가락이 다시 울려 퍼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 매장의 가능성을 깜짝 발표해 산유국 열망에 불을 지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석유 채굴에 나선 때는 1930년대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충북 진천에서 민간인들이 석유 광구를 출원해 지하 20m까지 뚫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1970년 초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무기화를 내세우면서 세계 경제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 자주권' 확보를 위해 석유 개발에 나섰다. 급기야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1월 15일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영일만 일대에 석유가 발견됐다"는 중대 발표를 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시추 장비의 윤활유를 원유로 착각한 것이 밝혀지면서 웃지 못할 대형 해프닝 사건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더러 가스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경제성이 없어 포기하는 안타까운 과정이 되풀이됐다. 이번 윤 대통령의 전격적인 발표로 유전 발굴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석유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변혁을 이끌었다. 석유(石油)를 뜻하는 영어 'petroleum'은 1556년 독일 광물학자 게오르크 바우어가 쓴 학술 논문에서 최초로 사용됐다. 암석을 뜻하는 그리스어 페트라(petra)와 기름을 뜻하는 라틴어 올레옴(oleum)을 결합한 단어로 '돌에서 나는 기름'이라는 의미다.
석유의 역사는 기원전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인들은 석유를 우연히 발견했다. 땅에서 샘물처럼 조금씩 스며 나오는 석유로 불을 댕기거나, 누수를 방지하거나, 접착하는 데 사용했다. 의약품으로 몸에 바르기도 했다. 19세기까지 유럽인은 석유 표면에 뜬 물질을 떼어내 수공업에 썼다.
동양에서 제일 먼저 석유를 발견하고 사용한 나라는 중국이다. 1세기 말엽에 쓰인 <한서>에는 '연하(延河)의 지류 수면 위에 가연성의 액체가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불을 켜는 데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송나라의 과학자 심괄(沈括)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서 '석유는 후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 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1973년 10월, 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당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 C,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가 수출을 중단한 것이 원인이었다. OPEC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미국 등에 수출을 금지했다. 배럴당 3달러에 불과했던 석유 가격이 4배인 11.65달러까지 치솟았다. 1980년에는 2차 오일쇼크가 찾아왔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석유 수출 중단과 자원민족주의를 표방한 OPEC의 유가 인상 조치가 화근이었다.
미국은 1820년 처음으로 석유를 생산하고 오랫동안 세계 최대 산유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근소한 차이로 호각지세다. 세계 주요 석유 수출국 대부분이 중동에 있다고 해서 석유가 사막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세계 석유 산유국 순위 10위권 중 절반은 중동이 아닌 다른 국가에 있다. 석유는 보통 사막 아래 깊은 땅속이나 바닷속에서 솟아난다.
많은 석유 기업들과 전문가들은 바다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석유의 보고라고 말한다. 이들은 막대한 양의 미발견 석유가 바다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북극은 석유의 신천지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톰 알브란트는 "미발견 석유의 절반 이상은 깊은 해저에 있고 그중 절반은 북극해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석유 잭폿(jackpot)이 터지길 응원한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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