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커크(Daniel Kirk)의 <도서관 생쥐>는 도서관에서의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동화다. 샘은 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 사는 생쥐. 도서관이 사람들로 붐비는 낮 동안에 샘은 쥐구멍에서 잠을 잔다. 그렇지만 해가 저물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샘의 시간이 시작된다. 도서관은 오롯이 샘의 차지가 되고, 샘은 도서관의 남모르는 주인이 되어 비치된 책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한다. 밤이면 밤마다 그림책, 위인전, 시집, 추리소설, 요리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모든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이렇게 책을 읽어가다가 샘은 어느 날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찍!찍! 어느 생쥐의 삶>이란 제목으로 책을 완성하고, 그 책을 도서관 서가에 비치한다. 샘의 책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게 된다. 급기야 사서 선생님은 '작가와의 만남'에 샘을 초대하는 포스터를 도서관 벽에 붙인다. 사람들 앞에 선뜻 나설 수 없는 샘. 도서관에 작은 거울을 놓아 작가와의 만남을 대신하게 한다. 샘의 선물은 아이들에게 자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도서관 서가에는 이제 아이들이 직접 쓴 책들이 하나둘 비치되기 시작한다.
책 읽기 경험이 글쓰기 경험으로 이어져
동화의 주인공은 도서관에 숨어 사는 생쥐다. 독서하기에 더 없이 안성맞춤인 도서관에서 생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밤이면 책읽기에 몰입한다. 책읽기의 경험은 다시 글쓰기의 경험으로 연결이 되고, 글쓰기의 경험은 사람들과의 교분과 만남으로 확장된다. 동화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선순환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에서 시작된 개인적 책읽기가 창작적 표현의 욕구로 상승하고,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보다 큰 가치로 승화된다. 그 결과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지에까지 도달한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사라 스튜어트의 책 <도서관> 속 주인공)이 도서관을 만들게 된 이유도 아마 이와 유사한 맥락일 것이다.
모든 일이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에서 시작되지만, 일정한 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것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나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도서관에서의 책읽기는 그 자체로 세상의 지식을 자신의 인식 체계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문화적 행위다. 지식의 심화와 확장을 가져오고, 이렇게 심화되고 확장된 지식은 또 다른 지식과 나눔으로 연결되면서 순환한다. 이런 순환의 연결고리가 몇 차례 반복되면, 우리의 삶과 문화는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도서관은 그런 순환이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에 대한 낭만적 꿈꾸기의 소중한 공간이다.
이제 도서관은 더 이상 단순한 책읽기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한 사람이 작가로, 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아서 제공하는 수원지(水源池)가 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도록 큰 어깨를 내어주는 거인이 된다. 세상의 비밀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사람에게만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도서관은 그 비밀을 빚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엮어내는 마법의 공간이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우리 고전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책 <책벌레와 메모광>은 방문학자가 되어 미국 하버드대에서 한 해 동안 머물렀던 시기의 경험을 담아낸 것이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을 드나들면서, 그는 도서관의 다양한 옛 책들과 만났다. 당연히 고전 속에서 선인들의 지식과 지혜를 만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켜켜이 쌓인 세월 동안 우연히 책 속에 남아 있던 은행잎과 모기의 흔적을 발견하고, 자신보다 앞서서 그 책을 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숱한 메모와 마주친다. 이 우연한 만남은 그에게 작가로서의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지혜의 통로
도서관에서의 책 읽기는 학자로서의 본업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 몰입의 과정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옛 사물들의 흔적 속에서 느낀 남다른 감회가 또 다른 창작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 바로 책이다. 이렇듯 도서관은 다양한 몰입의 소재를 제공하고, 또 다른 몰입을 통해서 문화적인 결실을 빚어내는 창조의 공간이다.
도서관은 책과 영혼이 조우하는 공간이다. 이 조우가 우리를 어떤 세상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조우로 말미암아 우리는 삶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희망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우주와 인생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사색하는, 삶의 비밀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얻는다.
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 두고,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그 만남이 어떤 깊이를 갖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얼마간 달라질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도서관에 머물고 있다면, 눈을 들어 잠시 주변을 살펴보라. 당신의 옆자리에서 책읽기와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을, 이덕무를, 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한성대 디지털인문정보학 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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