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국보급 술' 막걸리 열풍의 진원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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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00 | 최종 수정 2024.08.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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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가 떠오른다. 본격적인 장마 시즌에 접어들면서 막걸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혼과 추억이 담겨 있는 생활 속의 문화다. 어린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시음했던 추억의 고향 술이다.
막걸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보급 술이다. 한때 10대 히트상품 1위에 오르기도 한 막걸리(莫乞里)는 '막 걸러내는 술'이라는 의미다. '마구'가 아니라 '지금 막'이란 의미다. 탁하다고 해서 탁주(濁酒), 농사철 술이라고 해서 농주(農酒), 집에서 담그는 술이라고 해서 가주(家酒), 나라의 대표적인 술이라고 해서 국주(國酒) 등으로도 불렸다. 막걸리란 이름은 1916년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발표하면서 처음 공식적으로 불렸다. 주세법에서 알코올 농도 6~8%의 술을 막걸리로 분류하고 주세를 부과했다.
생활 속의 막걸리 역사는 한참 더 길다. 19세기 초 백과사전 '광재물보(廣才物譜)'에 '막걸니'가 처음 나온다. 기록은 그렇지만 천 년 이상 한민족의 쌀농사와 함께해온 술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막걸리는 '오덕(五德)'을 가졌다고 했다. 막걸리는 허기를 면해주고, 취기가 심하지 않으며, 추위를 덜어주고, 기운을 북돋워 준다. 또 마음속에 묻어뒀던 말을 술술 나오게 해 맺혔던 응어리가 저절로 풀리게 한다.
'뻑뻐억한 막걸리를 큼직한 사발에다가 넘실넘실하게 그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벌컥 한입에 주욱 다 마신다. 그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입을 쓰윽 씻고 나서 풋마늘 대를 보리고추장에 꾹 찍어 입가심한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채만식(1902~1950)은 수필 '불가음주 단연불가(不可飮酒 斷然不可)'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막걸리는 원료 재배 지역의 기후, 누룩, 제조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막걸리의 영역 파괴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막걸리는 식이섬유와 단백질, 미네랄 등이 함유된 영양의 보고다. 막걸리의 식이섬유는 같은 양의 식이 음료와 비교하면 100~1000배나 많다고 한다.
과거에는 밀가루 등으로 막걸리를 만들어 숙취가 심한 술로 푸대접을 받았다. 탁주 업자들이 발효 기간을 앞당겨 생산원가를 줄이려고 화학물질인 카바이드(calcium carbide)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막걸리를 마시고 뒤끝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했다. 다음날엔 어김없이 숙취가 있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현대 막걸리 열풍의 진원지는 우리나라가 아니었다. 우리 막걸리의 참맛은 일본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2006년 무렵 일본발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2009년 막걸리 전체 수출액 중 일본 수출 물량이 86%를 차지할 정도였다. 일본에서 ‘맛코리(막걸리의 일본식 발음)’의 인기는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막걸리는 대통령들과 얽힌 일화도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배다리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곡막걸리를 좋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10월 한·일 정상회담 오찬 때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건배주로 사용했다. 2010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한국의 날 만찬 건배주로 국순당의 '미몽'을 사용하기도 했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천상병(1930~1993)은 시 '막걸리'에서 이렇게 읊었다.
막걸리가 장차 한류의 주인공이 될까. CNN은 2022년 '막걸리는 어떻게 소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나?'라는 기사에서 막걸리를 조명했다. 한때 저렴하고 세련되지 않은 술로 여겨졌지만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해외 시장 공략까지 나서는 상황이라는 것. 실제로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류 열풍에 이어 K-주류의 대표격인 막걸리에 해외의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 중인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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