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캥거루의 나라에서 만난 반가운 한글!

호주 시드니 혼스비 도서관

도서관닷컴 승인 2024.08.13 15:11 | 최종 수정 2024.08.13 16:39 의견 0


시드니 하늘은 맑고 푸르다.

푸르러 하늘 끝에 맞닿은

쪽빛 바다 위로

뭉게뭉게 떠가는 하얀 양떼들

털갈이를 잊은 채 어디로 가는 걸까.

몇 놈은 잔등에 하얀 털 잔뜩 이고

어린 몇 놈은 잰걸음 뒤뚱거리며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하버브리지를 건넌다.

나는 두 팔을 흔들어 주었다.

찰랑거리는 공기가 내 손끝을 스치는 동안

하얀 양떼들은 뭉쳤다 흩어지고

다시 뭉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어서

숲속 앵무새와 코알라와 놀던

새끼 캥거루에게 다가갔다.

캥거루도 이방인이 궁금했는지 다가왔다.

"두발로 잘 서는구나."

"너 몇 살이니?"

새끼 캥거루는 발육이 덜 된

앞발이 손인 듯

반갑게 악수를 하곤

한국말은 못 알아듣는다는 시늉을 하며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와!" 혼스비 도서관, 한글 책 무려 500여 권 비치

2주 여정으로 도착한 시드니의 8월은 남극 빙하를 스쳐 온 바람 때문에 춥다. 우리나라와 정반대 계절인 호주는 지금이 한창 겨울이다. 그렇다고 눈이 내리지는 않는다. 슬쩍 스쳐 가는 바람이 "너 춥니?"하고 물을 뿐, 눈사람까지 선물하진 않는다. 그래서 호주 사람들은 겨울이면 흰 눈이 내리는 K팝의 한국을 부러워한다.

인구 2600여만 명(2020년 기준)이 살고 있는 호주. 캥거루 4500만 마리가 대륙 전역에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대비 1.8배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다. 그야말로 캥거루 나라인 셈이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캥거루를 쉽게 볼 수 있다. 호주 사람들에게 캥거루는 단순히 보호해야 할 동물 이상의 가족개념이다.

호주는 한반도의 약 35배의 큰 땅을 가진 나라이지만 시드니 길은 생각보다 좁아 보인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길이 시원하고 뻥 뚫린 느낌을 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지인의 차량을 타고 시내 투어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와 반대로 움직이는 차선은 생경했다.

여행 셋째 날 필자는 숙소 인근에 있는 혼스비 도서관을 찾았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정년퇴임 후에는 시간적인 여유도 생기고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1주일에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집 근처 분당 서현도서관을 찾는 일은 일상이 됐다. 호주에 여행 와서도 도서관에 관한 발길은 멈출 수 없었다. 시드니 도서관이 우리 도서관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또 우리나라 책은 구비 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혼스비 도서관은 1995년에 문을 열었다. 도서관은 겉보기에 마치 창고 같다. 도서관은 서양인들의 실용주의적 검소함을 느낄 수 있어 정겹게 다가온다. 내부도 별다른 장식이 없이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 가운데는 넓은 공간을 두어 제법 많은 시민들이 책을 읽으며 조용한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연출한다.

섹션별로 진열된 책 중에 반가운 한글 책을 발견했다. "와! 이런 조그만 도서관에 우리 책이 있다니!" 놀라움의 외마디가 속으로 터져 나왔다. 한글로 된 책이 무려 500여 권이나 시드니 변방 작은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대한민국의 위상을 체감했다. 특히 가톨릭 신자인 필자로서는 이곳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은 감동이요 행복이었다.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있는데 누가 옆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 사람은 바로 혼스비 도서관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6개월째 일하고 있는 정지윤 씨다.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시드니 도서관 운영과 관리, 그리고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담론을 커피 향에 담으며 얘기를 나눴다.

글·사진=김재남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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