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구속돼 갇힌 사람을 변호해보면, 당연히 '풀려나는 것'이 당사자와 가족의 최우선적인 희망이고, 변호하는 목표 역시 조속히 '석방시키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수사와 재판을 위해 구속된 사람은 체포된 며칠 동안은 경찰서 유치장에서 있다가 구속이 확정되면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수용자 복장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구금 생활을 하게 된다. 징역형으로 구금된 것과는 달리 단지 갇힌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것이기에 수사와 재판 일정이 없으면 구금실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이 부분이 재판이 확정돼 노역을 하는 징역 수형자와의 차이점이다. 법상 수용자에는 미결수용자와 기결수용자가 있다. 이 글에서는 미결수용자를 전제로 한다.
아무 일 없이 하루 종일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만 전전긍긍하며 수 개월간 구금 대기만 하는 것은 심적으로 고통일 수 밖에 없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동료 수용자와 소위 '재판'을 하는 것이다. 서로 구금된 이유를 물어보며 해당 재판부 판사의 성향과 예상 선고 및 형량을 가늠하는 것인데, 구치소에 자주 들락거린 단골 수용자가 이런 재판을 주도하게 된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재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필자는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그 자리에 있겠냐'며 부질없는 일이라고 조언해주지만 대부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그 외에 할 일이라곤 가끔 찾아오는 변호인 접견과 죄를 인정하는 반성문을 쓰는 것이 주요 일상이 된다. 반성문조차 귀찮아서 전혀 쓰지 않는 수용자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조기 석방이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그것도 '자주' 반성문을 쓰는 것이 일상이다.
최근 필자는 비슷한 잘못을 반복해 벌금 정도로 처벌됐다가 결국 수사 과정에서 체포·구속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상태에 있는 피고인의 2심 변호를 맡았다. 사건의 성격을 보니 엄청나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 결과를 야기한 것은 아니었으나, 과거 전력과 본 사건의 수사 재판 중 행실 자체를 나쁘게 볼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1심은 갓 변호사가 된 동창 친구가 변호를 맡았는데, 1심까지 진행된 것을 보니 '설마 실형을 받겠어?'라는 생각에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 변제를 게을리했고, 무엇보다 타성적으로 쓴 변명 취지의 반성문만 '꾸준히' 제출된 상태였다. 필자가 1심 판사라도 눈에 빤히 보이는 피고인의 태도에 엄중한 처벌로 혼내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민사재판은 변호사가 출석해 진행하기 때문에 굳이 본인이 재판에 출석할 필요는 없다. 반면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 달리 당사자 본인이 직접 재판에 참석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형사사건 변호사는 당사자 본인이 할 일에 대해 알려주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코치해주는 선생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변호를 잘하면 뭐 하겠는가? 형사재판에서 본인의 말실수 하나에 그동안 애썼던 변호가 물거품이 될 수 있는데. 즉, 할 말과 안 할 말을 가려주고, 꼭 해야 할 말은 반성문에 잘 담도록 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가 맡은 사건에서도 처음 구치소 접견을 갔을 때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편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본인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 등 속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라고 한 것이다. 우선 피고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역시나 피고인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는 것과 이렇게까지 구속될 이유가 있는지, 체포할만한 사건도 아니지 않냐고 하소연했다. 왜 1심까지 제출한 반성문들이 '그 모양'인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실제 형사사건 변호는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양형요소가 된다. 범행을 자백하고 시인했는지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진심으로' 반성까지 했는지는 피고인의 속마음이라 판사라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진심 어린 반성 여부는 형량을 정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 이유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는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재범 위험성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반성이 진심인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 방법적인 최선은 피고인이 쓴 반성문일 수 밖에 없다. 학교 입학이나 회사 입사에서 자기소개서가 필수인 이유도 결국 본인이 쓴 글에서는 그 속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20년간 형사사건 변호의 경험으로 보건대 대부분의 구속 피의자·피고인의 반성문은 '진심으로 반성합니다'는 들어있지만, 진심이 느껴지게는 쓰지 못한다. 진심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글쓰기 연습의 부족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본인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반성문을 쓴다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이런 죄는 필연적으로 피해자를 상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반성문에서 최소 절반 이상은 피해 내용과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들어가야 함은 마땅하다. 그런데 대부분 반성문을 쓴다고 하면 판사에게 사죄하는 내용의 약간과 본인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하소연, 출소하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된다.
처음 쓴 반성문에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담다가도 나중에 작성한 반성문에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도 없고, 그동안 부모님께 불효한 것에 대한 깊은 후회를 담은 '불효자 부모님 전 상서'가 되기 일쑤다.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누구든 살면서 가장 힘들 때 찾는 게 '부모'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의 효심이 아니라, 죄에 대한 적절한 벌을 판단하는 것이다. 또한 형사재판은 피해자를 대신해 국가가 공적인 형벌권을 대신 행사하는 것이기에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반성문은 본질을 벗어난 주제 없는 글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필자가 맡은 사건에서는 피고인에게 실제로 하고 싶은 말들 중 애초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분과 법리상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이해시키고 본인이 진심으로 선처받고 싶다면 마음부터 바꿔야 한다고 설득시켰다.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피고인 본인이 직접 작성해 제출할 반성문과 2심 법정에서 할 진술을 생각할 때, 본인 스스로 깨닫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성문을 쓸 거면 사건과 피해자에 대한 내용(후회, 사과, 반성)은 최소 절반을 쓰고 그 외 나머지 분량은 부모님과 아내, 자녀에 관한 얘기를 쓰라고 권했다. 이것도 걱정되고 조마조마해서 반성문 일체를 제출하기 전에 필자가 검토한 후에 최종 제출하라고도 해놨다. 몇 번에 걸쳐 접견을 하면서 작성한 반성문을 봐주고, 잘 써진 반성문을 추려주며 이런 방향으로 계속 작성하라고 독려를 해준 덕택인지 반성문이 제법 잘 나오게 됐다.
다행히 담당 사건은 피해자와의 합의도 잘 성사시키고, 진심으로 작성하게 한 반성문 덕분인지 피고인은 구정 설 직전 보석으로 석방됐다. 최종 판결도 집행유예 선처를 받았다. 아무쪼록 그 피고인이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기원한다.
박원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