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司書, librarian)'는 일반인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쳐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리 후한 점수는 아닐 듯하다. 초년병 시절에, 한 선배가 던진 말이 아직도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사서기자'라고 굳이 접두어를 붙였다. 일종의 비꼼이었다. 마이너리티가 뭐 대단한 것을 한다는 투다. 그땐 수긍하듯 가만히 듣기만 했다.
사서라는 직분은 역사적이다. 조선시대 때 사서와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 관직이 있었다. 바로 예조(禮曹) 아래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6품(正六品) 사서다. '암행어사의 전설'로 불리는 박문수 등이 이 관직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종의 왕실 개인교수로 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다. 서양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최초로 지구 둘레를 측정한 그리스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 바람둥이 카사노바 등이 도서관 사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동양에서는 도가(道家)의 창시자인 중국 철학자 노자(老子)가 꼽힌다. 그는 중국 주나라에서 왕궁의 도서관 관리 책임자였다. 중국 공산당의 지주 마오쩌둥(毛澤東)도 베이징대학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이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직으로서의 '사서' 명칭은 광복 후에 등장했다. 국립도서관 기구와 직제 속에 사서부(司書部), 직명으로 사서와 사서관(司書官)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명칭들은 기구명이나 직에 불과했다. 사서직의 전문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사서를 도서관직의 개념으로 법률상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1963년에 제정, 공포된 '도서관법'에서다.
사서 자격증은 국가전문자격증이다. 1966년부터 발급되기 시작했다. 한국도서관협회에 따르면 1966년 이후부터 2022년 9월 30일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사서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총 9만3,028명이다. 이중 1급 정사서가 3,331명, 2급 정사서가 5만4,862명, 준사서가 3만4,835명이다.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단 4명이었던 한국인 사서 수가 해방 이후 그야말로 빅뱅을 일으키듯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중 준사서 수의 증가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취득 루트가 많이 다양해졌다. 전문대(사이버대 포함)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비전공자는 성균관대 등에 1년간의 교육과정이 있다. 단기 속성 과정을 통해 준사서 자격을 얻고는 '나도 전문직 사서'라며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됐다. 사서의 전문직화를 논하면서 준사서의 양산은 일종의 모순이다. 이런 추세라면 도서관 현장에서 머지않아 주객이 전도된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사서는 전문직인가. 아니, 전문직으로서 마땅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현재의 사서 자격증은 요건만 갖추면 자동으로 출력된다. 별도의 필터링 과정이 없다. 사서자격증은 일종의 졸업장처럼 되어 버렸다. 이래서는 사서직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사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구제할 묘안은 없을까 자문해본다. 답은 별천지에 있지 않다. 그동안 우리가 고민했던 목록 중에 있다.
그 첫 발걸음은 사서자격증 국가시험 제도의 실시다. 단, 4개년의 교과과정을 이수한 사람에게 자격시험을 보게 하자. 이른바 같은 '사(士) 자(字)' 전문자격증 취득 요건처럼 동일하게 일정 기간의 학습 과정은 필요하다.
실용학문으로서 문헌정보학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일선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에 관심을 갖는 다른 학과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제 다음 단계는 문헌정보학 대문에 들어서면 자신의 미래가 훤히 내다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미래 경쟁력의 씨앗이다. 그 씨앗을 잘 가꾸어 아름드리 같은 튼튼한 나무로 만드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도서관계는 젊은이들을 비전 있는 미래의 사서로 남게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래성 있는 문헌정보학 전공자들은 도서관계 입성을 꺼린다. 사회적 인식과 위상, 처우가 불 보듯 뻔해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겠지만, 어느 대학에서는 문헌정보학도 중에 변호사, 판사, 심지어 의사까지 나왔다고 한다. 관련 학과 졸업생이 모두 관련 업종에 진출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간극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런 이탈 현상들이 특정 학교에서만 보이는 흐름일까.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정사서보다 준사서가 많은 직업군이 된다면 이탈 현상은 더 가속화할 것이다.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 이라는 말이 있다. 꽃길보다 돌길이 바른 길이라면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가보자. 약은 쓸수록 몸에 좋고, 고생 끝에 딴 열매는 더 달콤하기 마련이다. '사서 출신 ○○에 임명'으로 뉴스거리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서'라는 접두어를 존경과 자부심의 아이콘으로 만들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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