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라면이 글로벌 한류붐에 일조하고 있다. 라면 수출액은 지난해 처음으로 7억 달러 선(7억6543만 달러)을 넘어섰다. 수출액은 2015년부터 8년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제 한국라면은 '국민식품'에서 '한국 대표식품' 브랜드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간편식의 대명사인 라면. 값싸고 조리하기 쉬워 '제2의 식량'으로도 불린다. 라면은 조리가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린다. 조리법도 무궁무진하다. 라면 한 그릇 열량은 면이 480㎉, 국물이 60㎉로 총 540㎉ 정도. 라면 한 가닥 길이는 약 65㎝. 한 봉지에 보통 75가닥의 면발이 들어가 총 길이는 약 50m다.

라면은 꼬불꼬불한 면발이 뭉쳐져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돼 있다. 왜 면발이 꼬불꼬불한 걸까. 긴 면발을 작은 봉지 안에 넣자면 몸을 최대한 구부릴 수밖에 없는 것 당연한 이치. 장점은 다른 데 있다. 꼬불꼬불하면 면이 잘 부서지지 않는다. 조리 시간이 단축되고 면이 더 쫄깃쫄깃해져 맛이 좋다. 빨리, 많은 기름을 흡수해 잘 튀겨진다.

면발이 노란 것은 면의 원재료인 밀가루(소맥분)에 들어 있는 플라보노이드 색소와 영양 강화를 위해 첨가한 비타민 B2 때문. 플라보노이드는 알칼리와 만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황색으로 변한다. 우동이나 국수 면은 소맥분에 물과 식염만 첨가하지만 라면은 여기에 간수를 넣는다. 이 간수는 탄산칼리의 포화수용액으로 강한 알칼리성이라 열에 의해 노랗게 변하는 성질이 있다.

라면은 때로 오해도 받는다. 방부제가 첨가돼 좋지 않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음식이 부패하려면 온도와 습도, 양분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라면의 경우 면의 수분 함량이 10% 이하(대부분 4~8% 정도)로 유지되기 때문에 미생물이 번식할 수 없다. 굳이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아도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라면은 중국의 납면(拉麵·중국 발음 라미엔 '끌어당겨 만든 면'이란 뜻)이 일본으로 전해져 라멘으로,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 라면이 됐다. 라면의 발상지는 일본이다. 닛산식품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1910~2007)가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 라멘(제품명)'을 개발했다. 이후 묘조(明星)식품이 1961년 현재와 같은 분말스프를 첨가한 라면을 처음 생산했다. 이것이 오늘날 라면의 모태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농심이 아니다. 1호 라면은 삼양라면이다. 1965년 출시된 농심라면의 원조인 롯데라면은 두 번째다. 당시 신춘호 회장(1930~2021)이 이끄는 롯데공업(농심의 전신)이 내놨다. 삼양라면의 탄생은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1919~2014)의 착안에서 비롯됐다. 1960년대 초 우연히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가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에 그는 무엇보다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한 경험이 있던 그는 라면이 식량 문제를 해결해줄 유일한 열쇠라고 판단했다. 이어 일본의 라면 제조기술을 도입해 1963년 9월 15일 우리나라 첫 라면 '삼양라면'을 탄생시켰다. 당시 라면 가격은 중량 100g에 10원.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오랜 기간 밥과 국의 식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라면이 한 끼 식사라는 사실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게 사실.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식품도 생소했다. 라면의 '면'을 무슨 섬유나 실의 명칭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1965년 때맞춰 나온 정부의 혼분식 정책은 가뭄 속 단비였다.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때부터 라면은 서민들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발명한 나라는 일본이지만, 전 세계에 라면 열풍을 일으킨 나라는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다. 라면의 식법은 저주시종(箸主匙從), 즉 젓가락이 주가 되고 숟가락은 종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