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사이] "속 터진다 속 터져"… 소송이 오래 걸리는 이유

도서관닷컴 승인 2023.12.15 09:54 | 최종 수정 2023.12.15 10:00 의견 0

'왜 이렇게 소송이 오래 걸리나요?'

변호사로 일하면서 성가시도록 듣는 질문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쉽게 이해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매번 고민을 한다.

'소송이 오래 걸리느냐'는 비교를 전제한 질문인데, 우리나라는 실상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소송 진행이 빠른 편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모바일 어플 몇 번 클릭만 하면 1시간도 되지 않아 집 현관까지 음식이 배달되고, 대부분의 민원서류 또한 인터넷 모바일로 확인이 가능한 나라에 살다보니 유독 소송이 느리고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일반인들 입장에서 보면 소송이 왜 오래 걸린다고 '느끼느냐'가 핵심이 될듯하다. 법조인끼리 우스개 소리로 '민사소송을 1년 안에 끝낼 수 있는 판사가 누가 있겠냐'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을 일반인들이 듣게 된다면 대부분 아연실색할 것 같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답을 구해보자. 먼저, 소송을 하거나 당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판단하는데 재판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지 답답하다. 사법은 기본적으로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한다. 뭔가를 '이미 안다'는 것은 예단이고 편견이기 때문이다. 사법정의를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양손에 칼, 빈 저울을 들고 있으면서도, 두 눈은 안대로 가리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판결은 '모른다'에서 출발을 하기에 사건의 배경 상황을 판사에게 처음부터 일일이 설명하고, 증거로 뒷받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상대방(주로 피고)에게도 반박할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 이런 지난한 절차를 밟아야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절차 자체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적 과정으로 인해 재판이 일반인들의 생각처럼 대체적으로 빠를 수가 없게 된다.

소송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소송은 당사자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쉽게 말해 '소송=게임'이라는 것이다. 누가 잘하느냐에 따라 소송 승패가 좌우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송 사건은 애매하다. 그렇지 않다면 소송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양측 간 치열하고 팽팽한 공방이 계속되고 지리한 다툼으로 재판은 길어진다. 테니스, 배드민턴 등 박빙의 게임에서 쉽게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긴 랠리를 연상하면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판‧검사, 변호사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물론 판‧검사, 변호사 수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실제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는 급증했지만 여전히 변호사들은 바쁠 수 밖에 없다. 변호사 수가 늘었다는 것은 수임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것이고, 예전 '벌이'를 유지하려면 그 만큼 수임사건 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동시에 많은 사건을 감당하고 변호하려면 가급적 재판기일을 넉넉히 잡아 시간을 벌어 놓아야 한다.

우리나라 판‧검사는 사법부, 법무부 소속 '직업 공무원'이다 보니 일정 기간마다 인사발령을 받는다. 지역과의 유착 우려로 일반 공무원보다 인사발령도 잦은 편이다. 길어야 2~3년 정도 근무한다. 인사발령이 나게 되면 대부분 전임 판‧ 검사가 담당했던 사건을 승계 받고 원점에서 소송기록을 검토한다. 실제 판‧검사가 인사발령을 받은 후 특정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매년 초 인사발령을 앞두고는 재판 일정을 잡지 않게 되어 사건처리가 더 지연될 수 밖에 없다.

그 외에도 수사나 재판의 승소보다는 지연 자체를 악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국가대표 축구경기에서 시간을 끌기 위한 중동국가의 '침대축구'를 생각해보면 된다. 절차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소송지연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소송행위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대법원장이 법원의 재판지연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그 해소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과연 가능할까. 근본적으로 사법절차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일반인이 느낄 수준으로 개선될지는 의문이다.

박원경 변호사(유튜브 '이기는 박변' 운영)

저작권자 ⓒ 도서관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