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반전] '세계 3대 악처' 현대적 관점서 해석하면?

도서관닷컴이 전하는 상식 이야기

도서관닷컴 승인 2025.01.02 16:54 의견 0

아내를 처(妻)라고도 부른다. 인터넷 유머에 여러 종류의 처가 등장한다. 고래고래 악을 쓰면 악처, 약간의 찰과상을 입으면 일부다처, 아침마다 요강을 비우면 조강지처, 현모가 두 여자를 거느리면 현모양처, 지금 매우 지쳐 있으면 현지처….

아내에게는 그들만의 포커페이스가 있다. 남편에게 애교를 떠는 양처(良妻)와 남편을 모질게 몰아붙이는 악처(惡妻)의 얼굴이다. 악처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행실이나 성질이 악독한 아내', 즉 'Bad Wife'다. 한 남편은 "이곳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곳인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혹여 죽은 악처가 부활이라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문난 악처는 유난히 시대의 영웅에게 많았다. 나폴레옹의 처 조제핀, 링컨의 처 메리, 아우구스투스의 처 리비아, 아인슈타인의 처 엘자, 워싱턴의 처 마사, 유방의 처 여후, 푸치니의 처 엘비라, 하이든의 처 마리아 같은 이들이다.

특히 철인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의 처 크산티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의 처 콘스탄체,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처 소피아는 세계 3대 악처 반열에 올라 있다.

이중 크산티페는 '3대 악처의 선봉', '악처의 원조'로 불릴 만큼 악처계의 대모로 꼽힌다. 이름의 영문명 'Xanthippe'가 악처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다. 화를 참지 못한 그녀가 악담 끝에 남편의 머리에 물을 끼얹자, 소크라테스는 태연히 "천둥번개 다음에는 큰비가 내리기 마련이지"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소크라테스는 누가 아내에 관해 묻자 "그녀를 견뎌낼 수 있게 되면 천하에 어떤 사람이든 견뎌내지 못할 사람이 없겠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악처는 '백 년의 부작(不作)'이라고 한다. 아내가 나쁜 것은 '백 년의 원수'라는 뜻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속담이다. 악처는 있고 악부는 없다는 식이다. 그런데 틀린 말이다. 태생부터 악처인 사람은 없다. 악처의 얼굴을 끄집어내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악처는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남편과 가정의 발전에 촉매제 역할을 했던 강한 아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거장의 아내들은 하나같이 거목 남편에 가려 더 나쁘게 묘사됐다. 이들은 억울하게 악처의 오명을 뒤집어쓴 측면이 있다.

크산티페의 악행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상상력이 부풀려져 과장된 부분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처의 험담을 입에 달고 다녀 '크산티페=악처'라는 등식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혹자는 악처인 아내 덕분에 소크라테스가 전력으로 철학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처의 입장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집안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추남에 나이 많고 경제력도 없는 구제 불능이었을 것이다.

모차르트 처 콘스탄체는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악보를 헐값에 팔아넘겨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죽을 때 빚이 있었던 데다 자녀를 공부시키려면 악보를 팔아야 했다.

톨스토이의 처 소피아는 남편이 82세의 나이로 가출해 시골의 간이역에서 죽음을 맞게 한 원인 제공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피아는 48년간 남편과 동고동락하며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깔끔하게 정서해 준 훌륭한 조력자였다. 저작권 문제로 끊임없이 남편과 다툰 이유도 생계를 맡아야 하는 절박감에 나온 당연한 요구였다.

*한국아파트신문에 연재 중인 '김규회의 色다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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