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옳고 타인은 틀렸다(아시타비·我是他非)."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이기적 편향'의 습성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공한 경우는 자신의 공로로, 실패할 경우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 상황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자신의 장단점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장점은 대단한 것으로, 단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결함 정도로 생각한다.
한 조사에서 운전자들에게 '왜 법규를 지키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많은 운전자들이 자신의 잘못은 논외로 치고 교통법규의 미진한 부분만 탓했다. 우리 사회 분야에서 4류로 평가받는 정치권은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꼽힌다. 내 편과 네 편으로 진영논리에 매몰된 정치판은 내로남불이 일상화돼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로남불의 경향은 나타난다. 내로남불을 습관처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더 빠져든다. 분명 틀리고 잘못된 것이지만 그 짜릿한 스릴 때문에 도저히 포기할 수 없게 된다.
'페리숑의 콤플렉스(Perrichon complex)'는 마음속에 꽈리를 틀고 있는 내로남불의 심보를 잘 보여준다. 19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외젠 마랭 라비슈(1815~1888)의 희극 <페리숑 씨의 여행>에서 차용한 용어인데, 작가는 인간의 묘한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흥미롭게 묘사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페리숑은 아내, 딸과 함께 알프스로 여행을 떠났다. 딸에게 반한 두 젊은이 아르망과 다니엘도 동행했다. 여행 중이던 어느 날 페리숑이 말에서 떨어지려고 했고 그 아찔한 순간에 아르망이 재빨리 달려들어 그를 구해줬다. 이를 본 딸과 아내는 아르망에게 대단히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페리숑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생명의 은인이기에 기꺼이 고마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도움을 과소평가하려 애썼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나무를 막 붙잡으려던 참이었고, 설령 떨어졌다 해도 크게 다치지 않고 멀쩡했을 거라는 식이다.
다음날 페리숑은 두 번째 젊은이와 빙하 트레킹을 했다. 다니엘은 발을 헛디뎌 크레바스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페리숑은 급박한 상황에서 가이드와 합심해 다니엘을 구했다. 페리숑은 딸과 아내 앞에서 자랑스럽게 그 일을 떠벌였다. 다니엘 또한 폐리숑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며 아낌없는 찬사로 박수를 보냈다.
이후 페리숑은 딸에게 아르망보다는 다니엘에게 관심을 갖도록 부추겼다. 나중에는 아르망이 구해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그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페리숑은 남에게 도움받은 사실은 과소평가하고, 자신이 도와준 일은 과대평가했다. 이렇듯 어느 한쪽의 영향을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하는 사회심리 현상을 '귀인오류(Attribution error)'라고 한다. 어떤 일이 성공했을 때 자신의 역할이나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당시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뜻한다.
거짓으로 사실을 호도하는 사람은 나중에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진실은 일시적으로 감춰질 뿐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처음에는 진실과 조금밖에 빗나가지 않은 것이라도 후에는 천 배가 벌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자기 이로운 대로만 행동하는 것)의 독단은 건강한 사회의 걸림돌이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인 성철 스님(1912~1993)은 "참으로 사는 첫걸음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데에 있다"고 했다.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은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