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름지기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어린 시절에 귀가 따갑도록 듣던 말이다. 착한 아이로 박수를 받던 아이는 커서도 '착한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렇듯 지나치게 자신의 욕구나 소망을 억제하면서 착한 아이가 되려는 것을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이라고 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어른이 돼서도 솔직한 감정을 숨긴 채 착한 것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사람들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반응한다.

착한 것이 마냥 선(善)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종종 나쁜 사람(bad guy)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 관객을 끌어모으고 시청률을 견인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사람이란 선의의 거짓말도 하고 필요에 따라 과장도 하는, 말하자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쓰는 사람이다. 이들의 역할이 너무나 강렬해 때로 주연은 감감하고 나쁜 조연만이 또렷하게 기억 창고에 저장되기도 한다.

남녀 간의 만남에서도 나쁜 사람 캐릭터는 묘한 매력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저 순진하고 착한 이미지는 세상에 좀 어리숙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들은 시크하면서도 묵직한 카리스마를 가진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스타일을 선호한다.

왜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는 걸까. 이는 마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흔히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으로 불린다. 구축한다는 건 만들거나 완성하는 것이 아니고 쫓아내고 몰아낸다는 뜻이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시장에서 몰아낸다는 의미다.

그레셤의 법칙은 16세기 영국의 상인이자 금융업자인 토마스 그레셤(Thomas Gresham, 1519~1579)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소재의 가치가 서로 다른 화폐가 동일한 명목가치를 가진 화폐로 통용될 경우, 소재 가치가 높은 화폐(good money)는 유통시장에서 사라지고 소재 가치가 낮은 화폐(bad money)만 유통된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 I・1533~1603)도 시장에서 악화를 쫓아내지는 못했다.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들에 대해 가치를 식별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나쁜 것이 좋은 것을 서서히 밀어내 결국 시장에는 나쁜 것만 남게 된다. 인력 관리에 소홀한 회사에서 자질이 우수한 인재는 떠나고 열등한 인력만 남게 되는 것도 한 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착한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모든 영역에서 착한 것이 옳다는 진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즉, '착한 것이 나쁜 것을 징벌한다'는 틀은 각종 전설과 민화, 동화책,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무를 자르는 듯한 선, 악의 이분법적 구조만으로는 더 많은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양한 양념이 있어야 음식도 맛이 좋은 법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도 비슷한 이치다. 착하다고 여기는 한길만을 고집하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 감정의 벽에 길이 막히면 돌아가든 뚫고 가든 다른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오솔길이 지름길이라면 굳이 큰길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1보 후퇴, 2보 전진'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때로는 관계나 목표를 위해 약간의 후퇴도 필요하다. 오늘 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바로 포기하지 말자. 다른 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늘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착하다고 해서 결과까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행복을 가혹하리만치 희생하면서까지 착하게 살 이유는 없어 보인다.